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됐던 충북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을 연출한 이상우 감독은 자신의 좌우명을 ‘길을 잃지 말자’라고 소개했다. 살아가며 적어도 길은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물론 그 길은 ‘정도(正道)’이거나 ‘중용(中庸)’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중심을 잡고, 길을 놓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살아보자는 뜻일 게다.
노근리사건이 일어난 지 60년이 지났다. 믿었던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 당시의 가해자였던 미군은 길(이성)을 잃고 만행을 저질렀고. 선량한 피란민들은 죽음으로 영영 길을 잃어버렸다. 노근리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에 의해서다. 당시 미군은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 명령에 따라 학살사건이 발생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2년에 기획된 영화 ‘작은 연못’은 3년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간의 촬영 준비, 3개월간의 촬영, 3년여 간의 후반 작업 등 8년간의 긴 기다림을 거쳐 마침내 지난달 15일 개봉됐다.
오늘로 5.18 광주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다.
‘폭도’들의 ‘폭동’으로 인한 ‘굉주사태’로 언론에 보도되며 왜곡됐던 광주항쟁이 제대로 세상에 소개된 것은 아마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서 항쟁 참가자, 목격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소설가 황석영 씨가 ‘목숨을 걸고’ 책임 집필했다는 책이다.
당시 서슬 퍼런 신군부가 선량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며 무차별 총격을 가하자 이에 맞서 시민들이 궐기한 광주민주항쟁은 아직도 고통으로 남아있다. 정권욕에 눈이 먼 신군부는 광기에 사로잡혀 길을 잃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다 어처구니없이 폭도로 몰린 시민들은 길 위에서 허망하게 길(생명)을 놓아버렸다. 그 날 살아남은 사람들도 길을 잃고 헤매거나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이처럼 비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