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그좋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경우는 대부분 쇼에 가깝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자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의 카드로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소속의원 대부분이 의원직 사퇴를 들고 나왔다. 사퇴서를 제출한 의원이 70명이 넘었고 정 대표를 비롯한 천정배, 최문순 의원 등은 독자적으로 사퇴를 결행해 국회를 떠났다.
당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에게 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계은퇴도 함께 선언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퇴서를 낸 의원들 가운데는 “사퇴를 선언하기는 쉽지만 국회에 복귀할 때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마땅치 않다”는 뼈아픈 질책이 나오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직후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서를 냈지만 10일만에 “약속을 못지켜 죄송하다”며 국회로 돌아온 적도 있다.
좀 다른 경우지만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가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민주당 김진표 의원도 지난달 20일 후보단일화 경선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후보경선 패배로 민주당의 자존심을 크게 실추시켰고 경기지역 민주당 기초단체장 후보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수원 영통구가 지역구인 김 의원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자리를 박차고 도지사 선거전에 뛰어든 것 자체가 유권자들과의 약속파기다. 지역정가에서는 그가 국회의원직을 떠나 도민으로 거듭나는 큰 정치인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지난 19일 예상과는 정반대로 슬그머니 의원직 사퇴서 제출을 철회해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김 의원 측은 “여야 동료 의원들의 간곡한 만류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같은 김 의원의 처사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정치적 그릇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참여당 유시민 선대위에서 활동하겠다는 그의 정치활동 계획도 민주당 후보들을 봤을 때 개운치만은 않다.
국회법에는 ‘공직선거 후보자로 등록된 때 의원직에서 퇴직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현행 선거법에선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할 경우의 의원직 사퇴에 관한 규정이 없어 이에 대한 입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나라당 후보로 화성시장에 출마한 이태섭 화성시의회 의장과 시의원에 재출마한 홍일성·백남영 시의원이 “지방선거 준비를 하느라 의정활동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5월분 세비를 반납한 것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