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풋내기 시절, 삼 십 초반에 등기 우편(登記郵便)을 받았다. 대한인지 한국인지 웅변협회라는 어마어마(?)한 곳에서 발송한 공문(公文)인데…. 내용인 즉, 귀하를 언제 어디서 열리는 전국 웅변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委囑)한다는 것이다.
웅변과 인연은 작던 크던 별무(別無)한데, 누가 이런 것을 보냈을까? 그러나 혹시 그럴 리는 없지만 나의 훌륭함(?)을 어떻게 이들이 알았을까? 진정한 판단의 에러(Error)였다.
하여간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A4용지 분량에 임원 명단이 가득 찼는데……. 명예 대회장에 당시 유명 정치인의 이름이 나열돼 있었다.
인생 선배(?)의 이름을 발견하고, 전화를 해서 연유를 물어 보았더니 다짜고짜, “이유를 묻지 말고 좀 도와줘”
당일, 심사위원으로서 권위의 상징인 진한 색깔의 양복과 머리도 반듯하게 정리하고, 광화문에 있는 건설회관에서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 호국 선열에 대한 묵념, 애국가 봉창. 시작은 제대로 된 행사였다. 연사(演士) 한 명당 제한 시간 2분(分)……. 과연 2분에 어떻게 우열을 가릴까? 하기야 천 명 가까이 참석을 했으니…
어린 소년들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주장합니다.” “외칩니다.” 끝부분은 하나같았다.
착하게 바르게살기가 주제였는데 내용은 흡사했다. 참기 힘들 정도의 개구쟁이들이었지만 단상(壇上)에 오르면 말 하나는 천사(天使)였다.
하여간 북새통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할 말을 잊어버려서 발을 동동 구르고, 또 길게 말하는 학생은 단상 아래로 끌려 내려지고….
과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후에는 그나마 심사위원 6명 가운데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연상 무대 뒤편으로 들락거리고, 호기심에 무대 뒤를 가 보았는데… 아뿔싸! 못 볼 것을 보았다. 수많은 트로피와 상패가 대기하고 있었다. 돈 뭉치가 오고가고, 명단을 고함치듯 부르고 적고….금세 알았다. 돈을 주는 사람은 웅변학원 원장님들이고, 돈을 받는 사람은 주최 측 사람이었다.
지금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지라 긴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양복 위 포켓에 꽂아 두었던 심사위원용 꽃을 누가 볼세라 얼른 떼어버렸다.
어수선한 대회가 끝나자 수백 명이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우승컵 혹은 트로피를 안고 나왔다. 나를 참여시킨 사람은 웅변인(雄辯人)인 동시에 종로 상가에서 트로피를 판매하는 업자(業者)였다.
지금은 개척교회의 목사로 열심히 착하게 살고 있지만, 솔직히 그 땐 엉터리였다. 지금은 분명 훌륭하다.
얼마 전, 전국 사진 협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돈이 왔다 갔다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4억원 가량이라고……. 미필적 공범(未畢的 共犯)이었던 웅변심사위원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인기상, 모범상, 노력상, 우정상, 친절상 심지어 청소상도 있단다.
“난 이렇게 잘 할 수 있다”라는 최면성(催眠性) 표창도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상이란 바람직한 행동이나 뛰어난 능력에 대한 격려와 보상의 의미를 그 가치로 삼는다.
좀 알려진 유명한 사람 응접실에 무슨 단체가 주는 표창장과 감사장이 덕지덕지 놓여있는 것을 볼 때……. 없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의 경력 란에, 어떤 단체에서 주는 상이란 말은 쏙 빼 버리고 대한민국 장한 부모상을 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겐 왠지 웅변대회 심사했던 경험이 떠올라 색안경을 쓰는데, 나만 탓 할 수 있을까?
떳떳한 경쟁에서 우열(優劣)을 가려서 상을 주고받아야지, 금전적인 거래가 조건이 되는 상. 이것도 일종의 범죄(犯罪)이다. 순진한 사람들은 어두운 이면(裏面)을 모르고 칭송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또 탈락된 사람은 서운함을…….
하여간, 욕먹는 상은 아니 받음만 못한 것이다.
목사로 변신한 당시 대회장을 만나서 심사비 지불을 요구하면, 제발 그때 이야기 꺼내지 말라고 싹싹 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젠 그리운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