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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주도유단(酒道有段)

 

흑백 필름시대의 문화계 야사(夜史)는 참으로 재미있다. 픽션, 논픽션을 넘나들어 믿거나 말거나에 가깝지만 어쨌든 정겹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선생은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

아직도 이 ‘행복’이란 시가 술자리에서 애송될 정도이고 보면 한국 시단의 우뚝 선 어른이다.

소천(笑泉) 권태호(權泰浩) 선생은 청마만큼은 유명하질 않지만 음악한 분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우리들 입에 익은 노래를 만든 분이다.

성악, 작곡 이 분야에서 이미 전설이 된 분이다.

청마와 소천은 사돈(査頓)이다. 매파(媒婆)는 술!

청마의 따님과 소천의 아들이 부부의 인연을 맺었는데 당시의 결사(結事)에 살을 좀 붙인다면 문학과 음악 - 두 분야의 예술의 합체라고 떠들썩했단다.

소천의 아드님 권영건 선생은 한때 나의 주사(酒師)였다.

낮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밤에는 대학에서 일어를 가르치는 ‘晝英夜日’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미군 통역 장교로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두 군데를 뛰었으니 월급도 많을 텐데 술값 때문에 항상 후줄근했다.

그러나 항상 향기로웠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틀림없이 저 세상에서도 새로 사귄 주붕(酒朋)들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리라.

주법(酒法)을 주도(酒道)로 승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하셨는데 자연 술에 대해서는 백과사전(百科事典)이었다.

규합총서(閨閤叢書)라고 조선시대의 아녀자들을 위한 종합교양서적 비슷한 책은 거의 외우다 시피 했다.

밥 먹기는 봄같이 국 먹기는 여름같이, 장은 가을같이, 술 먹기는 겨울 같이 하라.(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가운 것이 좋다는 말)

그리고 술 마시는 순서도,

1. 집잔(執盞) : 모두들 잔을 집고,

2. 만잔(滿盞) : 주위의 술을 가득 채우고,

3. 거잔(擧盞) : 잔을 높이 들고,

4. 충잔(衝盞) : 부딪치고,

5. 접잔(接盞) : 입술을 대고,

6. 건배(乾杯) : 비우고,

7. 찰배(察杯) : 술이 남긴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8. 착잔(着盞) : 잔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어렵디, 어려웠지만 원샷은 비천한 사람들의 주법이라 하면서 이런 순서를 지켜야만 교양 있는 술꾼이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셨다.

그리고 술자리의 표정과 자세 관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귀띔했는데 대강 기억하는 것이, “목소리는 되도록 낮게, 눈은 가급적 적게 뜨고 술에 취해도 흔들거리지 말고, 어깨의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안주는 지나치게 탐하지 말고, 양념이 입술에 묻어도 혀로 훑지 말고…”

치기(稚氣)의 시절을 훨씬 넘긴 지금도 흉내 내지 못하고 있으니 선생은 분명 제자를 잘못 선택 한 것이다.

요즘 건강을 생각해서 - 아니 감당을 못해서 술자리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술자리 약속한 날은 아침부터 엄청나게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그 때마다 “사람이 술을 지배해야하는데, 결코 술이 사람을 지내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말씀을 상기시키지만, 효력은 얼마 가지 않는다.

평범(平凡)과 비범(非凡)의 차이!

동탁 조지훈 선생의 ‘주도유단’이란 글을 발견했다.

바둑의 단급을 원용해서 주당의 서열을 매긴 글인데 9급에서 9단까지인데 9급은 불주(不酒)라고 해서 술을 아주 못 마시지는 않으나 안 마시는 사람, 가슴이 따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9단은 폐주(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변명성 평가라고 할 수 있는데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이 없다는 것은 만사에 악착 같이 달라붙질 않고, 야무지지 못하단 말이다.

하기야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야무진 이가 없으니 옳은 말이기도 하다.

정치, 종교, 은근히 돈 자랑, 좌석에 없는 사람 도마에 올리지 말라고 주석사불(酒席四不)도 말씀하셨는데, 이튿날 숙취로 아픈 머리를 정리 해 보면 4불 가운데 한두 가지는 꼭 입에 올렸으니…….

하여간 술!

인생사 가운데 영원히 만점 받지 못 할 숙제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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