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제(時制)가 과거가 되었지만, 뜨겁던 선거 열풍이 끝이 났다.
당연히 노변좌담(路邊座談)의 주인공은 선거!
“퇴근길에 웬 스무 살 가량 여식(女息)이 후보자 명함을 건네면서 자기 아빠인데 꼭 지지해 달라고 했다. 피곤한 모습이 안쓰러워 그 후보에게 표를 주겠노라.”
“아니…. 나도 똑같은 경우를 당했는데 혹시 감성(感性) 기법의 새로운 선거 전략이 아닐까?”
다른 선거구에 살고 있는 직장동료 두 사람의 이야기!
만약 딸을 사칭(詐稱)했다면, 선거법 위반인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오고갔다.
어찌됐든, 그냥 단순히 명함만 전달하는 것 보다, 후보자와 남다른 관계를 밝히면서 지지를 호소할 때는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선거란, 후보자들 가운데서 좀 더 나은 사람을 뽑는 제한된 선택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인물 본위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느 덧 이벤트화 되는 것 같아, 이것 또한 두렵다.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의 시선(視線)을 끌고 또, 언론과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특별한 기획을 잘 한 사람이 돋보이는 것 같아서 본질이 흐려진다.
황소처럼 묵묵히 일하겠다고 황소 탈을 뒤집어 쓴 사람. 그리고 교육 관계 출마자들은 옛 서당의 회초리를 든 훈장의 복장(服裝)을 갖추고 한 표를 호소하고! 또 특히나 여성 출마자들은 육십을 훨씬 넘었음에도 옛날 고등학교 교복과 댕기 머리로 분장을 하고…. 하여간 안쓰럽다.
이야기가 조금 돌았다. 가족들의 선거 운동 참여에 관해 좀 날카롭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접근 해 보자.
“아버지!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부끄럽고 계면쩍지만, 제 한 몸 바쳐서 거리로 나서겠습니다.” 완전한 심청(沈靑)이의 환신(還身). 이렇게 자발적인 참여도 물론 있겠거니와, ‘당선되면 나라 망하고, 떨어지면 집안 망한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부모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 “얘야! 애비 할 일이 있고, 자식 할 일이 따로 있는 법인데, 네가 정치에 대한 제대로 식견을 갖춘 것도 아니고, 단순히 혈연관계를 앞세워 지지하는 것은 내가 거북하다. 그리고 처녀의 몸으로 가장 가치 있게 지켜야 할 것은 순수함이다. 정치판이란 진흙탕인데 조심하더라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너의 뜻은 고맙지만, 네 할 일에 충실하거라.”
너무 소설을 쓴 것은 아닌지?
선거에 관해, 오래 시간이 지났지만 눈에 밟히는 장면이 있다.
15년 전쯤, 외국에서 정치학 박사(博士)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배. 아내는 장래가 기대되는 소프라노,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가정형편상 외국 유학은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장래가 촉망된다고 장학금을 주었다. 이야기 듣기로는 유학을 떠날 때 송별연이 참으로 찬사(讚辭) 일색(一色)이었단다. 그때 사진도 보았다.
보따리 장사로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렸는데 아이들은 커가고, 생활이 고달 퍼서, 장래를 기약 할 수 없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정치학 이론으로 무장(武裝)되어 있으니, 직접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돈은 없고, 이름은 알려야겠고…. 비 주룩주룩 오는 날, 사람 많이 다니는 중앙통 네거리에 온 식구가 동원됐다.
정치학 박사님과 소프라노, 초등학교 저 학년의 아들과 딸!
오가는 차량을 보면서 무턱대고 꾸벅꾸벅 고개 숙여 90도 절을 하는 일가(一家)!
형편없는 득표로 낙선했다. 기약 없는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어느 덧 정치학자에서 말 그대로 정치꾼으로 변모한다. 대소(大小)의 행사에 꽃을 턱하니 달고 내빈석에 앉아 있었지만, 입성은 갈수록 남루해졌다.
낙선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딴에는 좀 매몰차게 나무랐다. 총명함을 잃은데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고 어떻게 어린애들까지 거리로…. 본인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심지어 정치적 앵벌이라고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했는데, 국회의원, 시장 선거에 연거푸 낙선하면서 2전3기인지, 3전4기인지 하여간 이번에 광역의원으로 당선됐다.
축하에 앞서 과연 빛나는 청춘을 소비하면서 매달릴 만큼 선거가, 당선 여부를 떠나 가치 있는 일일까?
제발 당선되면 나라 망하고 떨어지면 집안 망한다는 이런 말 쑥 들어갔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겸허히 평가해보고 확신이 섰을 때 남 앞에서 나섰으면 좋겠다. 안타까워서 한 마디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