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영화 이야기다. 춘향문화선양회가 3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의 상영중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춘향전’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동안 춘향전의 감초역할로 재미를 더했던 방자를 주인공으로, 온갖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했다.
개봉 전부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노출수위야 그렇다 쳐도 간간이 내뱉는 대사는 다분히 도발적이다. 예를 들어 몽룡과 정사를 나누던 향단이가 “춘향이 걔 별거 아냐. 내가 더 ×있다구” 이런 식이다. 아무리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21세기에 원본(原本)‘춘향전’은 고리타분한 이야긴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대는 바뀌었고, 사극이 역사를 버릴 정도로 선정적이다.
국내 최고의 역사드라마 작가로 꼽히는 신봉승 씨가 최근의 사극에 대해 재미만 추구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방송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펴낸 ‘조선의 음담패설’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대 한 선비가 남명 조식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가 무엇입니까?” 남명이 화를 내며 내쫓자, 선비는 이번엔 퇴계 이황 선생을 찾아가 같은 질문을 했다. 이에 퇴계는 “○○는 걸어다닐 때 숨어 있는 것으로 보배처럼 귀하지만 사고 팔 수는 없는 것이고(步藏之者 而寶而不市者也), ××는 앉아있을 때 숨어 있는 것으로 사람을 찌르긴 하지만 죽이진 않는다(坐藏之者 而刺而不兵者也)”는 답을 내놨다. 이 이야기는 조선후기 음담패설을 모은 ‘기이재상담(紀伊齎常談)’에 실린 내용으로 책에 실린 31편의 음담패설은 당시 분방했던 민간의 성(性)을 보여준다.
너나 없이 발칙한 세상이다. 발칙한 상상력이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지금 ‘역치(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세기)’ 상승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지간한 선정적인 자극에 말초신경은 그저 무덤덤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고 간에 발칙함은 여전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