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전국실업육상선수권이 열리고 있던 전남 영광종합운동장에서는 작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남자육상 100m결승에서 쏟아진 3개의 ‘비공인 한국기록’ 때문이었다. 한국 육상 단거리 기대주로 꼽히는 김국영(19·안양시청)이 10초 17의 기록으로 우승한데 이어 여호수아(인천시청)와 전덕형(경찰대)도 10초 18, 10초 19로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자 장내는 일순 흥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흥분도 잠시. 31년간 깨지지 않던 기록경신의 기대감은 바람 앞에 무너졌다. 뒷바람이 초속 2m를 넘으면 기록으로 공인 받을 수 없고 참고기록으로만 남는다. 이날은 초속 4.9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로부터 48일 만인 7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4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100m 준결승에서 김국영이 마침내 큰일을 해냈다. 예선에서 10초31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김국영은 준결승에서 10초23을 찍어 자신이 세운 신기록을 또다시 0.08초 앞당겼다. 불과 90분 만에 ‘두 번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총알 탄 사나이’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풍속은 초속 2m. 이날 김국영이 예선에서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는 서말구(55)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동아대 재학시절인 1979년 멕시코시티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작성한 10초34가 최고기록이었다.
이 대회가 끝난 뒤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육상경기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 서말구는 또 한 번 한국 육상을 잠시 흥분 속으로 몰아넣는다. 서말구는 태국, 일본, 인도네시아선수와 함께 400m 계주 아시아 대표였다. 몬트리올 경기장 옆 보조운동장에서 심판 2명을 배석시킨 가운데 기록을 잰 결과 서말구가 1등이었고, 두 심판 모두 10초00을 판정한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당시 심판 3명이 있어야만 공식 기록으로 인정될 수 있었기에 비공인으로 처리되고 만다. 유월의 바람은 유순하다. 김국영이 31년간 요지부동이던 한국 육상 100m 기록을 깬 것도 어찌 보면 유순한 유월의 바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