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청 소속 단거리 기대주 김국영 선수가 작성한 100m 기록은 31년 묶여있던 한국육상의 자존심을 치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마의 벽’처럼 여겨졌던 남자 육상 100m 기록 ‘10초34’를 31년만에 깬 것이다.
19살의 새내기 김국영은 7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전국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10초31과 10초23의 기록으로 질주, 지난 1979년 서말구가 만들어 난공불락이 된 한국기록을 연거푸 무너뜨렸다. 장한 일이다.
더욱이 김국영과 함께 레이스를 펼치며 신기록 대열에 합류한 임희남, 여호수아 등 남자 100m 라이벌 선수들까지 등장, 한국 육상의 앞날에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9초58’이라는 세계 기록과 너무 큰 차이를 두고 있는 한국 육상의 현실을 보면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다. 마의 벽을 무너뜨린 것에 만족하지 말고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육상계는 그동안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는 해도 안된다’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작년 1월 취임한 대한육상경기연맹 오동진 회장은 7개월 뒤 열린 베를린 세계육상대회에 갔다가 거의 바닥 수준인 한국 육상의 현주소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기업인 출신인 오 회장은 그래서 먼저 ‘패배의식에 찌든 지도자들의 의식부터 바꾸겠다’고 선언한뒤 지도자의 수준을 국제표준에 맞춰 끌어 올리기 위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까지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육상계가 안고 있는 고질병은 이 뿐만이 아니다. 우선 국내 육상대회가 너무 적다고 한다. 대회가 두달에 한번 정도이고 그나마 늦은 봄에서 여름 사이에 열리는 서너개가 전부라고 한다. 또 한가지는 지도자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다. 한 선수는 기록경기의 경우 최소한 2년간 틀을 잡아야 하는데 자주 바뀌는 지도자 때문에 코치와 선수 모두가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남자 100m의 신기록 달성은 육상 꿈나무들이나 기존의 육상인들 모두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는 뜻깊은 소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열악한 육상계의 토양에서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당장 내년에 열리는 대구세계육상에서 ‘들러리’가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5년, 10년, 20년을 위한 그림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