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기원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고대 유럽 혹은 고대 중국 기원설 등 그 논의가 분분하다. 하지만 현대 축구가 영국에서 기원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을 때에는 축구는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귀족 젊은이들이 단체경기를 통해 조직을 통솔하는 지도력, 개인과 조직의 관계 그리고 조직원의 충성 등을 체험케 하는 하나의 교육과정이었다.
귀족 특권층에 의한 축구의 배타적 점유는 오늘날에도 그 잔재를 확인할 수는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 디비전(Primera Division)의 레알 마드리드,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베티스 등 레알(Real)로 시작되는 구단이 유난히 많다. 레알은 스페인어로 왕실을 의미한다. 즉 이들 구단은 오래 전부터 국왕의 전폭적인 재정적, 정서적 지원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된 귀족중심의 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축구가 오늘날 같이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매김을 하게된 계기는 노동자와 시민 위주의 축구 클럽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스페인에서는 레알이라는 왕당파 계열의 구단에 대립해 시민 위주의 FC 바르셀로나가 결성됐다. 이후 영국에서도 시민 및 노동자 중심의 구단이 다수 결성됐다.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철도 노동자들이 결성한 구단으로 서민 정서가 주류를 이루는 구단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짐에 따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구단이 될 수 있었다.
귀족 젊은이의 전유물이었던 축구는 비교적 단기간에 대중에게 널리 보급돼 가장 사랑 받는 스포츠의 하나가 됐다. 이러한 대중적 사랑 및 급격한 보급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축구의 단순성과 평등성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상대의 방해에도 공을 상대의 골문에 집어넣는 것으로 승부가 갈라진다는 단순성은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원시적 성취감을 제공했을 것이다.
또한 모든 선수는 단지 자신의 발, 머리 등으로만 승부해야 하기에 모두 동등하다는 원시적 무계급, 무계층의 평등을 경험케 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성과 평등성을 매력으로 축구는 누구나 즐기는 보편적 스포츠가 됐던 것이다.
상업주의가 범람하는 오늘의 월드컵에서도 축구의 단순성과 평등성은 여전한 유지되는 가치일까. 각종 장비 등이 최첨단 기술과 결합해 왔다.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각 국의 경제력 등에 비례해 커다란 차이가 있어 왔다. 유럽은 그 중심이었고, 그 나머지는 변방으로 전락해 왔다. 물론 남미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활동무대는 유럽일 뿐이다.
지난 월드컵에서의 몇 장면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의 예선전 첫 상대인 토고 선수들이 참가수당 때문에 자국 축구협회와 갈등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다. 가난한 나라 축구 선수가 가지는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아가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축구의 도구성을 엿보는 하나의 계기였다. 또 FIFA 회장이 스위스 출신이기에 스위스와 상대하는 팀들은 심판의 오심을 감수해야 한다는 거대한 축구 권력에 대한 보도도 접했었다. 이미 이번 월드컵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들려오고 있다.
월드컵에서 축구의 상업성 및 정치권력화를 목격하면서 과연 축구가 여전히 단순하고 평등한가 반문하게 된다. 이제 축구는 단순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듯하다. 확률적 사실에 근거할 때 분명 축구의 단순성과 평등성은 부정된다. 하지만 축구에서의 금과옥조는 ‘공은 둥글다’이다.
그러기에 객관적 열세에 처한 팀이 상대적으로 강한 팀을 이기는 경우가 생겨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의외성이 흔하진 않을지언정 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경기의 의외성으로 인해 일견 단순하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은 축구가 단순 그리고 평등의 근원 원리로 회귀한다. 그리고 축구는 본래의 축구를 찾아간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 조에 편성돼 있다. 전부 쉽지 않은 상대들이다.
한편 북한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비롯해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 등 대륙별 최정예와 한 조에 편성돼 있다. 한참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 우리는 유로2004에서 우승했던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그리고 북한은 세계 최강인 브라질을 맞이해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2대 1로 석패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가 본래의 단순과 평등을 복원해 다소 열세로 인식되는 팀들이 절정의 팀들을 뛰어넘는 의외성이 빈발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선전을 기대하는 나의 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