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축구는 한없는 변방에 불과했다. 한데 1990년 이후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아프리카 특유의 축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내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견주는 축구의 신흥 강호들로 부상했다.
아프리카 축구가 새로이 형성되고 강력해진 배경은 무엇일까. 타고난 체격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한 이 시기 아프리카 제국(諸國)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향상돼 축구에 대한 관심이 진작됐으며 동시에 국가적 투자가 이루어졌던 것도 아니었다. 아프리카 내적 측면보다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아프리카의 축구가 도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름 아닌 축구 자본의 유입에 의한 아프리카 축구의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을 전후해 유럽 축구 자본은 아프리카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어린 나이의 가능성 있는 축구소년을 발굴했고, 저가의 투자로 매력적인 상품화를 도모했으며, 추후 이들을 유럽 축구시장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대표적으로 거명되는 이가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인 장 마르크 지유이다. 그는 1994년 코트디브와르에 처음으로 축구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1년 벨기에의 한 축구클럽에 선수를 판매한 이래 지금까지 140명의 선수를 프랑스·스위스·영국 등 유럽 각국의 프로 구단에 공급했다고 한다.
그를 축구 불모지를 개척한 축구의 전도사라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는 아프리카의 축구 노예상 또는 축구 인신 매매범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나의 파노라마를 떠올린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프리카 소년이 그저 축구에 대한 가능성만으로 판단돼 축구 노예상과 불공정 계약을 맺는다. 계약 과정에서 소년의 손에 쥐어지는 작은 금액은 가난한 소년 및 그 가족에게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불공정하지만 기꺼이 계약을 한다. 계약 이후 엄격하게 축구만을 위한 전사로 훈육된다. 물론 유럽 시장에서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학 등 일부 교육이 실시되기도 한다. 전사의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유럽의 각 구단에 그 상품성을 알리며 몸값을 흥정한다. 그리고 계약이 성사되면 몸값의 상당 부분 심지어 90%까지도 이제까지의 투자금액으로 회수된다. 유럽에 진출한 아프리카 축구 전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명은 쉬 이룰 수 없다. 극히 일부만이 유럽 명문 클럽 팀에서 생존해 엄청난 부를 획득하게 되고 뭇 아프리카 소년의 우상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극한 경쟁에서 밀려난다. 이후 본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저 유럽에서 아프리카 출신 난민으로 표류한다. 심지어 술과 마약 등으로 황폐화된 삶을 살기도 한다.
아프리카 축구 소년들의 장래에 실패와 인생 추락이 보다 빈번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전망은 크게 염려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유럽 빅 리그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는 극소수의 우상이 우선 인식된다. 그리하여 오늘도 몇몇 우상만을 쳐다보며 아프리카 소년들은 뜨거운 모래밭의 맨발로 축구 대박의 꿈을 꾸며 노예상의 간택만을 갈망하고 있다.
아프리카 축구를 생각하면 가족 모두의 배고픔을 탈피하고자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축구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월드컵 등에서 아프리카 국가의 선전을 보면 그 이면에 축구소년의 땀과 눈물, 그 미망(微望)과 좌절 등을 함께 떠올린다.
아프리카 대부분은 국가 살림이 궁색하다보니 월드컵에 참여하더라도 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그지없이 취약하다.
경기 전까지 지원은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경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마땅히 선수에게 돌아 가야할 참가수당 지급을 철회하는 등 대회 중 선수단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번 월드컵의 나이지리아, 지난 독일 월드컵의 토고 등이 그러했다. 이렇듯 취약한 조건임에도 열심히 경기에 임하는 그들이 그저 대견할 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우리의 접전이 이루어지자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이제까지의 감상은 뒷전이 됐다.
그리고 누구보다 간절히 우리의 승리만을 염원했다. 이른 새벽 마침내 그 염원을 이뤄 냈고 우리의 16강 진출에 격동했다.
하지만 예선 탈락이 확정된 후 황망히 그라운드를 떠나는 나이지리아 선수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서 한켠 안쓰러운 미안함은 어쩔 수 없다. 이제 그 미안함은 결선에서 나이지리아 몫까지 더 분발하여 보람된 성적을 거둠으로써 해소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