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말이 좋아 함께한 세월, 뒤돌아보니 할 만큼 한 것 같아 미련은 없습니다.”
오는 27일 현역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하는 63세 동갑내기 김병용, 이종구 조교사는 입을 맞춘 듯 인터뷰 첫 마디가 똑 같았다.
60세를 넘겼다고 하나 아직은 소도 때려잡을 만큼 팔팔한 터라 미련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들의 얼굴에서 그런 기색은 없다.
뚝섬경마장에서 서울경마공원까지 말과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마치 50여년.
강산이 5번 바뀐 그 세월을 한눈팔지 않고 오직 한길만을 달려와 정년을 맞은 그들 앞에 명예로운 은퇴식이 훈장처럼 기다린다.
서울경마공원에서 은퇴식을 가진 기수나 조교사는 20명도 채 되지 않아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 조교사는 정세가 극도로 어지러웠던 4.19시절, 중학생 어린 나이에 경마와 첫 인연을 맺었다. 지금처럼 미끈하게 생긴 경주마는 없었고 경주로 가우데 채소밭이 있던 시절이었다. 마필관리사와 기수가 따로 구분이 없던 1인 다역 시대, 말을 돌보랴, 말에 기승해 주로를 달리랴 숨 가쁜 나날이었다.
조교사 인생 23년 10개월 간 숱한 명마들이 그를 스쳐갔으련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희귀병을 앓던 ‘산수갑산’을 꼽는다.
뒷발 한 쪽 이상으로 발등으로 땅을 딛던 말이었다.
“그래도 승부근성이 있던 말이었어요. 더 잘 뛰었던 말도 많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말은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모자란 자식에 애착을 쏟듯 동물에 대한 애착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나간 세월, 경마산업은 화려한 발전을 했지만 그는 “마필관리, 조교의 노하우 등은 발전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선배의 주선으로 경마인생을 시작한 이 조교사는 기수로 자리를 잡아가던 1987년 조교사로 개업했다.
“큰 위기도, 굴곡도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지나간 날을 회상했다.
온통 말 이야기만 늘어놓고는 껄껄 웃는 이들에게서 진정한 ‘호스맨’의 면모가 물씬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