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민선 5기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 정치 지형도가 크게 바뀐 가운데 새롭게 출범하는 민선 5기는 그 어느 때보다 주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볼 때 야권의 득세는 여러모로 곤혹스럽게 느껴진다. 이는 광역의회는 물론이고 기초의회도 대부분 야권이 과반수이상을 차지함으로써 민선 4기가 추진해온 굵직굵직한 대형 사업들이 재검토되거나 폐기처분될 것으로 보여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된 것처럼 지난 선거동안 주요쟁점이었던 4대강 사업도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당시 야권 출마자들은 너도나도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외치며 표심(票心)을 자극했다.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이유로는 환경파괴와 사업 추진으로 인해 교육 및 복지예산 등이 삭감됐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생명을 살리고, 죽어가는 생태계를 복원하며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요지부동, 반대의 목소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여기엔 ‘대화와 설득’ 이라는 민주주의의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방정부인 자치단체도 이와 크게 틀리지는 않다. 일부 당선자들이 취임 전부터 전임자가 추진해온 대형 사업들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사업자체를 백지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경솔하기까지 하다. 지역의 현실과 여론을 심도있게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일부의 의견만으로, 단순논리에 의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성급히 재단하려든다면 그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의욕만 앞세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이제 선거는 끝이 났고 민선 5기가 새롭게 출범하며 시험대에 올라섰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정치는 생물(生物)과 같다’는 말을 그 어느 때 보다 피부로 실감했을 줄로 안다. 이러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4년 뒤 또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민심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직 당선을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공약을 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이의 이행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주민을 의식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단체장들은 취임식을 간소화하거나 아예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지 취임행사를 파격적으로 줄였다고 해서 지자체 살림에 별로 도움이 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일한다는 진정성이다.
6.2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한국정치사의 거목인 ‘3김’이 한 말이 생각난다. 앞서 얘기한 ‘정치는 생물’은 DJ(김대중 전대통령)가 한 말이다. YS(김영삼 전대통령)는 정치를 ‘세(勢)’라고 봤다. 정치는 동지들과 함께 세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2004년 정계를 은퇴하면서 JP(김종필 전국무총리)는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정치는 허망하기도 하지만 정치를 하려면 ‘허심탄회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시 정치 9단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DJ가 지략가(智略家)였다면 YS는 세를 위해 이익을 혼자 챙기지 않는 나눔의 도량을 보여준다. 실제로 YS는 성품이 후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치를 ‘허업’으로 본 JP는 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지는 몰라도 세를 중요시한 YS와 민심의 변화를 미세한 부분까지 끊임없이 관찰한 DJ는 대통령을 지냈지만 관조적인 JP는 ‘영원한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1995년 민선 1기 자치단체가 출범한 이후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동안 일부 자치단체의 수장들은 지극히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지역의 맹주로 군림하며 지방자치의 본질을 망각한 나머지 뒤끝이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한낱 소영웅주의에 취해 권력의 맛을 놓치지 않으려고 임기동안 선거운동에 매달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대부분 지역의 수장이 바뀐 이번 민선 5기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선 5기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권력에 기대어 군림하려는 ‘보스(Boss)’가 아닌 진정한 ‘리더(Leader)’로서 소통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소통’의 문제는 21세기의 화두나 다름없다. 그러나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알고 실천한 수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민선 5기 출범을 앞두고서도 예외 없이 단체장들은 주민과의 소통을 우선으로 꼽고 있다. 말로만 소통이 아닌 진심으로 소통하려면 귀담아 듣고, 아울러 민심의 변화를 정확히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함에 이롭다(忠言逆耳利於行)’고 했다. ‘쓴 소리’를 멀리하고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빠져든다면 애당초 소통이란 의미가 없다. 소통은 리더로서의 덕목이다. 주위가 온갖 귀에 발린 소리만 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리더는 커녕 ‘레더(Leder, 끌려가는 사람)’가 될 수밖에 없다. 진정 주민과 소통하지 못한 결과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리더는 측근을 신뢰하되 조심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4년이라는 시간도 잠깐이다. 이제부터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따라 4년 후가 기쁨일 수도, 고통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부디 모두가 성공한 ‘목민관(牧民官)’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