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천상병(1930~1993)은 생전에 아내인 목순옥을 “문디 가시나, 문디 가시나”하고 불렀다. 경상도식 사랑표현이다. 사람들은 천상병을 가리켜 기인이라고 했다. ‘오늘의 바람은 가고/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잘가거라/오늘은 너무 시시하다//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하늘을 안고/바람을 품고/한 모금 담배를 빤다//하늘을 안고/바다를 품고/한 모금 물을 마신다//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우물가, 꽁초 토막...’ 천상병의 시 ‘크레이지 배가본드’의 전문이다.
이 시는 1967년 7월에 일어난 ‘동백림(東伯林,동베를린)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초를 겪고 풀려난 직후 쓴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시를 쓸 당시만 해도 천상병은 멀쩡했다. 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인은 점차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1971년 여름 소설가 강홍규와 관철동에서 만나 신동문을 만나러 간다며 헤어진 뒤 갑자기 실종된다. 그 후 몇 달을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자 문우들은 그를 위해 유고(遺稿)시집(?) ‘새’를 출간한다. 민영이 시를 모으고 김영태가 사진조차 없던 그를 기억하며 초상화를 그렸다. 시집이 출간되자 홍은동에 있던 서울시립정신병원의 김종해로부터 연락이 오고, 생환한 천상병은 1972년 친구의 동생인 목순옥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의정부 수락산 기슭에 살며 천상병은 매주 금요일마다 인사동에 있는 전통찻집 ‘귀천’에 들렀다. 아내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즐겨듣던 시인은 이런 아내를 두고 “나는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유일의 시인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내 아내인가”라고 말했다. 목순옥은 1993년 펴낸 ‘날개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에세이집에서 천상병의 아내라는 꼬리표를 떼어낸다면 ‘귀천’이라는 보물이 있다고 적을 만큼 시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찻집을 끝까지 지켰다. 다시 태어나도 천상병과 만나 더 잘해주고 싶다던 마음 착한 아내가 지난 26일 세상을 떴다. 하늘나라에서 아내와 재회한 천상병은 아마도 특유의 어눌한 목소리로 “문디 가시나”를 연발하며 기뻐할 것만 같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