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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명절전 여성들 “나 떨고 있니”

2명절 증후군, 여성 배제·주변화하는 가부장적 문화<br>남성·남편·아버지 먼저 태생적 주도권 개선 나서야

추석이라는 대형 명절이 눈앞이다. 명절을 대하는 태도는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다르겠다. 이를테면 나처럼 소위 ‘적령기’를 지난 비혼자에게 명절이란 결혼 얘기를 허허실실 넘기거나 어른들이 모인 자리를 슬기롭게 피해 다녀야 하는 스펙터클 시즌이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앉아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올리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익숙한 풍경 속에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고, 유교적 의례와 근대적 가치가 혼재하며, 한국적인 가족문화와 결혼문화가 긴장관계를 이루며 얽혀 있다. 그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명절의 성별성, 또는 성별화된 명절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면 꽉 막힌 고속도로를 비추는 뉴스화면 마냥 늘 똑같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이른바 여성들의 명절증후군이다. 증후군을 겪는 대상을 애초부터 여성으로 상정하는게 불편할 수 있지만 어차피 명절증후군이 대부분 명절 속 남녀 역할놀이에서 생기는 질병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피하지 못할 바에 미리 준비라도 하는 게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 여기서 잠깐, 몇 년 전부터 온라인을 통해 구전되며 반향을 불러온 ‘며느리를 위한 詩’라는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자. 44조 운율의 시로서 구전문학의 걸작들이 그렇듯 작자는 미상이다.

음식장만 내가했네 지네들은 놀았다네 /절하는건 지들이네 이내몸은 부엌있네 /제사종료 식사하네 다시한번 바쁘다네 /이내손은 두개라네 지들손은 엄청많네 /그래봤자 내가하네 지들끼리 먹는다네 /…(중략)… 손님들이 일어나네 이제서야 간다하네 /바리바리 싸준다네 내가한거 다준다네 /남자들도 일한다네 병풍걷고 상접었네 /무지막지 힘들겠네 에라나쁜 놈들이네

이 시에 좀 뜨끔해지는 남자들도 있겠지만, 일 년 중 며칠만 무리하는 걸 과장한다고 할 사람도 있을 거고, 남자들도 내내 운전하지 않느냐, 힘들긴 다 마찬가지라며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이 시는 단순히 명절 노동분담의 문제를 넘어 전혀 여성친화적이지 않은 우리 전통의례의 어두운 면을 함축하고 있다. 예컨대 명절의례의 꽃인 차례(를 포함한 제사)는 부계혈통 중심의 가부장제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행사다. 남성 1인을 가장으로 위치짓고 그를 중심으로 권위와 질서를 만드는 가족구조,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혈통만을 중시하는 의례는 가부장제의 핵심이다. 그 속에서 여성들은 의례의 전후를 준비만 할 뿐 정작 남성들이 의례참여를 통해 형성하고 향유하는 연대에는 함께할 자리가 없다. 결국 명절증후군이란, 좀 거칠게 말하면 애초에 여성을 배제하거나 주변화하는 가부장적 가족문화 안에서 여성의 노동마저 주변화된 결과다.

이런 문제는 여자들의 일을 좀 도와주며 부담을 덜어주는 정도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통이라 이름 붙은 전제들을 끊임없이 문제 삼고 건드리면서 천편일률의 가족구조와 가족문화 자체의 지형을 변화시켜내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다. 요컨대 깊은 성찰, 토론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바로 실행 가능한 작은 대안이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번 추석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과의 만남을, 특히 긴 연휴를 즐기면서 우리 명절문화를 가만히 되돌아보고 개선점을 짚어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처음 해보는 거라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내 아버지처럼 프로 전업주부인 엄마가 시키는 일이라도 잘하면 된다. ‘원래 같이 해야 하는 일인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시키는 거라도 잘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하는 건 물론이다. 명절이 모두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좀 더 즐거워지는 방법이기도 하고, 뭣보다 성찰을 통한 변화란 그렇게 시작되는 거다.



노재윤 경가연 연구기획부 대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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