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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단원과 샤라쿠

우키요에(浮世繪)란 것이 있다. 일본 에도(江戶)시대(1603~1867)때 성행하던 풍속화로 주로 게이샤, 가부키 배우, 풍경 등을 그린 그림이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모네와 드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며 우키요에의 대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重廣,1797~1858)의 그림을 참고도판으로 소개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자포니슴(Japonisme)’은 서양화단에 문화적인 충격을 던졌다. 바로 우키요에의 영향인데 고흐는 ‘탕기 영감의 초상’의 배경에 우키요에를 잔뜩 그려넣었을 뿐만 아니라 히로시게의 ‘명소에도 100경’시리즈를 유화로 모사하기도 했다.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은 1794년 5월에 갑자기 나타나 이듬해 1월 모습을 감추기까지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50점이 넘는 우키요에를 남겼다. 이처럼 베일에 싸인 샤라쿠는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독일의 동양미술 연구가인 율리우스 쿠르트가 1910년에 ‘샤라쿠’를 펴내면서 새삼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가 누구인지, 설만 분분할 뿐 정확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샤라쿠가 단원 김홍도라는 주장이 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인 이영희 교수에 의해서 제기된다. 이 교수는 단원이 정조의 밀명으로 일본에서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샤라쿠의 활동시기가 마침 단원의 활동기록이 없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이 교수의 주장은 1996년 일본 아사히TV를 통해 방영됐고 1998년에는 ‘또 한 사람의 샤라쿠-바다를 건너온 조선화가’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지가 오래다. 삼십 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했다”. 단원은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림 하나로 중인의 신분임에도 연풍현감을 지냈던 단원이지만 쓸쓸한 말년으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조차 알려져 있지가 않다. 단원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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