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오전 10시쯤 수원시 권선구 세류3동 버드내노인복지관 2층. ‘한글교실 중급반’ 수업 시작까지는 30여분이 남았지만 일찍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노년의 학생들(?)이 글 읽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책상 위의 연필, 지우개, 필통, 책받침 등은 여느 학교 교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14명의 학생들은 평균 나이 65세~75세의 할머니들이었다.
각기 다른 사연이 있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이 곳에서 자음과 모음이 만나 어떤 글자가 되는지 알아보는 초급과정을 거쳐, 대여섯 개의 단어로 이뤄진 문장을 읽고 쓰는 연습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8개월째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심연신(67)할머니는 “한글 배우는 게 뭐 자랑이냐”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여고생처럼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한글 솜씨를 은근슬쩍 자랑해 보이기도 했다.
심 할머니는 “겹받침 있는 글자가 제일 어렵다”며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건데,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그럴 때가 제일 안타깝지만 그래도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중급반 한글교실 할머니들은 늦깎기 공부라 힘들 법도 한데, 이내 선생님이 칠판에 자음과 모음을 써내려가자 공책에 연필로 콕콕 단어를 눌러쓰며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중급반 반장 정청자(71)할머니는 “이미 다 배우고 외운 한글이지만 막상 수업 시간에 칠판에 쓰여진 것을 읽어보라고 하면 퍼뜩 생각이 안 난다”며 “내가 많이 늙어나봐”며 농담을 던졌다.
이처럼 한글교실이 열리는 데는 담임 교사인 정미자(67)할머니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됐다. 그녀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틀릴 때는 엄하게 혼을 내다가도 할머니 학생이 약한 부분은 꼼꼼하게 짚어주며 친구처럼 다가간다.
40년간 교직 생활 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길 만도 한데 정 할머니는 매주 2회 복지관 한글교실에서 4시간에 걸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 할머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며 “배움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나고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선생님으로 봉사을 하고 싶다”며 작은 소망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