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7 (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사설] 결국 친일명부 오르게 될 홍난파

화성시가 낳은 작곡가 난파 홍영후(1898~1941)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난파의 유족이 행정안전부(행안부)를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조사결과 통지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선고 하루 전인 지난 4일 취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는 홍난파가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봉선화’를 작곡하고 미국유학 중에도 항일운동을 펼쳤으나, 검거된 뒤에는 사상 전향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를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후손인 홍모(73·여)씨가 곧장 규명위를 상대로 본안소송과 함께 “친일행위 조사 결과 통지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고, 법원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처분의 효력을 중지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친일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규명위는 난파의 이름만을 제외한 채 일제강점 막바지인 1937~1945년에 친일 행각을 벌인 704명의 명단을 공개했고, 홍 씨와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본래 한시 기구로 출범했던 규명위는 활동을 종료해 행안부가 소송을 이어나갔다. 이 재판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1년여 간 세 번의 변론기일을 거쳤고 지난 5일 선고가 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9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홍 씨가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을 1일 취하했고, 행안부도 4일 이에 동의해 그대로 종결됐다고 한다. 그 결과 홍 씨의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의 결정도 무효가 돼 행안부는 기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홍난파를 친일명부에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번 일로 난파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그의 친일 행적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제강점 35년의 역사는 난파를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재단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무엇보다 그를 제외하곤 우리 가곡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음악사에 남긴 자취가 크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하지만 음악사에 남긴 공적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의 친일 행적까지 쉽게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흠결 때문에 그의 모든 생애와 예술을 ‘친일’로 단죄하고, 역사에서 지워야한다는 극단론이다. 이제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다간 그의 삶 전체를 균형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용량을 우리 사회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 세대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난파를 얘기할 때 하버마스의 이 경고는 준엄하기까지 하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