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유용과 직원비리 파문 등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여론의 비난속에 이사진 전원이 퇴진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달 29일 ‘사랑의 온도탑’ 대신에 서울 정동 공동모금회 건물 외벽에 ‘사랑의 온도계’를 조용히 설치했다. 공동모금회가 매년 연말께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에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모금활동에 들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양이도 낯짝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동모금회는 지난달 25일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앞으로 직원들이 단 한번이라도 공금을 횡령하거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가 적발되면 즉시 퇴출하고, 환수금액과는 별도로 비위에 해당하는 금액의 3배에 이르는 징계부가금을 징수하기로 하는 내용의 조직쇄신안을 내놨다.
또 유흥주점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클린카드를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셈이다. 더군다나 이날 공동모금회 간부들이 전원 유임된 것으로 알려져 여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의 와중에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공동모금회의 각종 비리가 보건복지부의 감사에서 걸려들지만 않았다면 모르긴 해도 더 큰 비리로 이어졌을 게 뻔하다. 공동모금회가 ‘비리의 열매’로 낙인찍힌 것도 딱한 일이지만 문제는 국민성금 유용 등 공동모금회의 각종 비리 파문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사업으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는데 있다. 공동모금회는 1일부터 내년 1월말까지 62일간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이어 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희망2011 나눔 캠페인’을 통한 집중모금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캠페인 모금 목표액은 내년도 복지사업 지원에 필요한 배분금 3천892억원의 57% 수준인 2천242억원으로 정해졌다.
‘사랑의 열매’는 1970년대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이웃돕기운동중앙추진위원회 발족과 함께 시작됐다. 3개의 빨간 열매와 녹색 줄기로 돼 있는데 3개의 열매는 각각 ‘나’와 ‘이웃’ 그리고 ‘가족’을 상징하며 빨간색은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줄기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라고 한다.
공동모금회가 본래의 취지를 회복하려면 지금으로서는 ‘세월이 약’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초심을 다잡고 ‘진정성’을 갖고 ‘투명성’ 확립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랑의 온도계’는 이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