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아시안컵 4강에서 라이벌 일본에 석패하며 아쉽게 됐지만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이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센트리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의 승패를 떠나 축하할만한 일이다. 박지성의 센추리클럽 가입은 우리나라 선수로는 8번째다. 센추리클럽은 FIFA가 정한 A매치 또는 국제대회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그룹을 말한다. 보통 한 해 A매치는 10차례 안팎이다. 10년 이상 국가를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부상없이 꾸준하게 뛰어야 달성할 수 있는 대기록이다. 박지성의 첫 A매치 출전은 2000년 4월 5일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전이다. 당시만 해도 무명에 불과했던 박지성을 올림픽대표로 발탁한 허정무 감독에 의해서다. A매치 첫 데뷔무대이기도 한 아시안컵에서 센추리클럽에 가입하기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달려오는 동안 그의 발자취는 한국축구 영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 첫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 동안 무려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했다. 한국축구는 ‘박지성의 시대’에 아시아의 호랑이를 넘어 세계축구의 다크호스로 성장했고, 당당히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유럽 축구의 명문 PSV 아인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누비며 쌓아올린 화려한 경력은 곧 한국과 아시아축구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며 박지성이라는 이름이 곧 한국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박지성이 11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면서 만난 9명의 감독 가운데 특별한 인연은 허정무와 히딩크 감독이다. 허정무 감독은 2000년 당시 프로지명도 받지 못해 명지대로 진학했던 무명의 박지성을 일약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했다.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을 발굴했다면, 히딩크 감독은 세계적인 선수로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줬다. 지칠 줄 모르는 놀라운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빈다 해서 붙은 별명이 ‘산소탱크’다. 그러나 은퇴 이야기가 도는 것을 보니 ‘산소탱크’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서 은퇴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아시안컵이 끝난 후 말하겠다”고는 했지만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센추리클럽 가입 여부를 떠나 그가 한국축구에 끼친 공헌도는 엄청나다. 은퇴를 운운하지만 그의 기량은 여전하다. 아니 완숙의 경지라 해야 옳다. 지금 한국축구계에는 급속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신예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더욱 빛나는 것은 경험 많은 박지성의 역할이다. 후배들이 온전히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할 때인 것이다. 박지성의 센추리클럽은 이제 후배들이 도달해야할 목표요, 축구를 하는 의미가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박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