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 일이다. 도시근교의 한 농촌마을에 새로 이사를 온 사람이 전입신고를 위해 이장을 찾아왔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전입신고서를 작성하던 이장이 물었다. “예. 궉 아무갭니다.” “곽씨요?” “아니 궉갑니다.” “예끼 여보슈. 궉가라니. 그런 성이 어딨단 말이요.” 그러자 답답하다는 듯 “청주 궉가라고. 정말 맞다니까요.” 하면서 자신의 내력을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이 궉(?)씨가 유명세(?)를 탄 건 ‘인라인의 요정’이라 불리는 궉채이(24)에 의해서다. 안양 동안고를 나온 그녀도 학창시절 특이한 성 때문에 놀림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상장에 ‘곽’이나 ‘권’으로 성이 바뀌어 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궉 씨는 2000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선산, 순창, 청주 세 본관에 74가구 2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궉 씨는 조선후기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순창에 궉 씨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고 오랑캐 성씨(胡姓)라고도 한다”고 나와 있으며 이덕무의 ‘양엽기’에도 “선산에 궉씨촌이 있는데 선비가 많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제법 오래된 성씨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귀화인 성씨를 제외하고 286개 성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김·이·박을 비롯한 100대 성씨가 99.1%를 차지하고, 나머지 0.9%는 독특한 희귀 성씨다. 인구가 100명 이하인 극희귀 성씨들도 적지 않다. 사(謝)씨는 진주와 한산의 두 본관이 있는데, 1960년에 19명이 있었으나 1985년에는 4가구에 30명으로 늘었다. 삼가 삼(森)씨는 1930년 국세조사 때는 나타나지 않은 성씨인데 1985년에는 85명이 확인됐다. 파평 옹(雍)씨는 원래 순창 옹(邕)씨였는데 1908년 민적 기재 때 옹(雍)씨로 잘못 기재됐다고 전한다.
이밖에 망절(網切)씨는 양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망절일랑이라는 일본인이 1968년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국방의 의무까지 마친 후 ‘망절’이라는 성씨의 시조가 됐다. 汁(즙)씨 또한 일제 강점기 철도 공무원으로 파견 온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즙간부가 어머니의 고향인 함경도 성진을 본관으로 즙 씨를 호적에 등재하며 시조가 됐다. 이처럼 생소한 성씨가 속속 늘어나면서 바야흐로 다문화 세상을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