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4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연예] ‘세시봉 친구들’ 윤형주·송창식·김세환 전국순회 공연

세시봉 신드롬 40년 우정의 힘

 

1960년대 청년 문화의 산실인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C'est Si Bon·프랑스어로 ‘매우 좋다’는 뜻).

이곳에서 1970년대 포크 음악사를 쓴 조영남(66)과 ‘트윈 폴리오’인 윤형주(64)와 송창식(64), 김세환(63) 등이 노래를 시작했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 연휴, MBC TV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세시봉 출신 가수들이 전파를 타자 반향은 신드롬 수준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세월에 농익은 음악과 이야기에 눈물났다’는 젊은 세대의 글이 퍼져나갔다. 가수 비도 트위터에 “세시봉 선배님들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라며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우정이 있다는 것. 오늘 눈물나는 노래와 말씀들 감동이었습니다”라는 감상을 올렸다.

악기 판매점이 밀집한 낙원 상가에서는 통기타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예스24 등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는 세시봉 가수들의 음반 주문량이 늘자 별도 코너를 만들었다. 새로 생긴 라이브 클럽들은 ‘세시봉’이란 간판을 잇따라 내걸었다.

40여 년을 뛰어 여러 세대를 아우른 감동을 반영하듯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의 전국 순회 공연 ‘세시봉 친구들’이 순항 중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서울을 시작으로 오는 7월까지 부산, 대구, 수원, 울산, 대전 등지를 돌며 공연한다.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과 15일 인터뷰했다.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가수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의외였는데.

▲내가 토크쇼에 나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그냥 여럿이 나간다니까. 하하.(송창식, 이하 송)

▲이장희 씨가 울릉도에서 오면 함께 저녁을 먹곤 했지만 함께 프로그램에 나간 건 처음이었다. 대본도 없이 우리 이야기를 하고 노래했다.(김세환, 이하 김)

▲솔직히 반향은 예상 못했다. 하지만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니 방송 자체의 희소성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윤형주, 이하 윤)

-세시봉의 음악과 이야기가 세대를 아우른 호응을 얻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문화는 인간 관계에서 형성되는데 요즘 음악이 대형화, 산업화되면서 그 밑바탕에 깔린 인간 관계가 상업적, 이해타산적이 됐다. 우린 돈에 민감하지 못했고 목적보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아하는 음악을 했다. 친구와 동지란 관계 속에서 음악에 우정, 유머, 철학을 담았고 그 우정이 40여년 동안 지속됐다는 점이 요즘 세대에겐 새로웠던 것 같다. 우리의 음악보다 사람 관계를 발견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또 ‘놀러와’가 젊은 세대 프로그램이니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을 법하다. 젊은 세대는 ‘부모님이 청춘 시절 저런 음악을 좋아했구나’라며 신선하지 않았겠나.(윤)

▲사실 우린 음악 활동을 계속 했고 포크 음악은 늘 존재했지만 이제야 여러분들이 찾아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그간 외면받은 것 같기도 하고. 함께 늙어간 팬들이 우리 노래에 목말랐던 것 같고 젊은 세대가 보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세대를 아울렀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다.(김)

-세시봉은 각자에게 어떤 곳인가.

▲카세트가 나오기 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듣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여느 음악감상실과 달리 무대가 있었다. 연주와 표현이 가능한 공간을 내줘 아마추어 뿐 아니라 기성 가수들도 찾았다. 우리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통기타를 들고 이곳에서 팝송을 마음껏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시봉은 내 음악의 고향이다. 하지만 1960년대 10년간 그 자리를 지키던 세시봉은 1969년 문을 닫았다. 당시 생맥주란 상품이 개발돼 통기타가 주류 문화로 빠져들면서 무교동 세시봉에서 명동의 '오비스캐빈'으로 중심이 옮겨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윤)

▲1967년 세시봉 무대에 처음 올랐는데, 당시 개인적으로 무척 상황이 안 좋아 먹여주고 재워준다니 섰다. 그러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가수로 데뷔했으니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곳이다. 난 원래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니 음악의 고향은 아니더라도 대중음악을 그곳에서 시작했으니 큰 의미가 있다.(송)

-음악인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난 꿈은 다 이뤄 마음이 편하다. 학창 시절 학교 등록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했는데 40여년 간 내 본업이 될 줄 몰랐다. 내 친구들은 정년퇴임해 연금을 받는데 여러분의 사랑으로 보낸 40년에 자부심이 있다.(김)

-세시봉 친구들이란.

▲윤형주 씨는 나와 40여년 간 노래했으니 보통 인연이겠나. 또 조영남 씨는 내가 맨 처음 팝송을 부를 때부터 같이 노래했으니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사람이다.(송)

-언제까지 무대에서 노래할 것인가.

▲식물인간이 아닌 채로 살아있는 한 노래하겠다. 하하.(송)

▲나도 사는 날까지 열심히 노래하고 싶다.(김)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