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우수가 막 지날 즈음 조선시대의 9대 간선로 가운데 제7호로인 삼남대로(서울~해남) 경기남부 초입인 소사벌에서 진위까지 걸었다. 특히 소사동에서 칠원동까지 <평택 소사벌 개발지역>으로 사라진 옛길을 아스라이 바라보며 길 주변에 핀 들꽃들과 민들레꽃을 응시하며 역사의 편린(片鱗)들을 떠올려 본다.
과거 조선시대 수많은 사람들은 이 길로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상경하였을 것이고,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낙향(落鄕)도 하였을 것이다. 인생사 인환(人患)의 거리에서 수많은 사연들이 이 길가 모퉁이 어디엔가는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 그 길은 그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길일뿐이요, 대로(大路)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흔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민들레꽃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꽃은 국화과의 다년초 야생화이다. 일명 구덕초 혹은 덕초(德草)라고도 한다. 구덕초는 사람들이 흠모하는 9가지 덕을 갖추었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즉, 일덕(一德)은 인(忍)이요. 이덕(二德)은 강(剛)이고, 삼덕(三德)은 예의(禮義)를 갖춘 꽃, 사덕(四德)은 지(知)이요, 오덕(五德)은 정(情)이고, 육덕(六德)은 근(勤)이요, 칠덕(七德)은 용(勇)이고, 팔덕(八德)은 인(仁)이요, 구덕(九德)은 용(用)이다. 이러니 어찌 민들레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으랴.
이런 덕성을 지닌 민들레꽃이 삼남대로변에서는 민중들의 이미지로 오버랩 된다. 민중들은 힘이 없기에 모진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야 하는 인내와 강건함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가진 재물이 없기에 근면해야 했고 눈치껏 살아야 했기에 지혜로움과 용맹함도 지녀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심장한 것은 인지상정과 어진 마음으로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시대의 영웅이 역사를 견인하기도 하지만 민중은 이를 완성시키는 대양(大洋)적 파워였다.
논두렁에 핀 민들레꽃은 여간 탐스럽지 않다. 그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 질긴 생명력을 본다. 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흙은 생명이 뿌리를 내리도록 기회를 주는 평등한 근거이다. 흙과 민들레는 상호보완적이며 동시에 민중적 이미지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흙을 잘 가꾸어야 한다. 흙을 약탈만 하고 가꾸지 않으면 천심(天心)을 소유한 농부가 아니다. 그런 곳에 민들레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진정한 농부는 농약, 제초제 등 독성물질로 흙을 황폐화시킬 것이 아니라 퇴비거름을 주어 토양이 숨을 쉬게 해야 한다.
삼남대로를 거닐며 역사, 사회적 토대와 생태 환경적 토양의 중요성을 떠올려 본다. 자양분이 빠져나간 흙은 존재의 근거를 상실해 이 땅이 사막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그런 곳에 민들레는 생존하기 위해 사악해져야만 되는 말하자면 독초로 바뀌어야만 할 것이고 마침내 농부들도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역사, 사회적 토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중 자신들도 이런 농부와 같다면 생명을 잃고 무기력해질 것이다. 농부가 흙을 위하고 흙은 민들레를 위하고 민들레는 농부를 위하는 선순환적 질서를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진춘석시인·평택 한광여중 교사
▲ 1992년 시문학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現) ▲ 시집 <카프카의 슬픔>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