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
이호철 글|글누림 312쪽|1만원.
현역 최고령 소설가 이호철, 팔순맞이 소설집 ‘해외동포 이야기’ 펴내
“가만 있어보자...” 노작가는 잠시 손을 꼽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허! 이제 내 위로는 없는가 봐요.”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어느덧 우리시대 최고의 현역 작가가 된 소설가 이호철이 팔순을 맞아 신작 소설집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글누림)을 펴냈다. ‘이호철의 해외동포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06년 KBS의 ‘해외동포 체험수기’에 응모한 중국, 러시아 등 해외동포들의 수상작을 소설형식으로 녹여냈다. 먼저 그들의 수기를 소개하고, 실제로 방송에 패널로 출연해 몇몇 사람들과 허물없이 소감을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문학 월간지에 발표한 것을 묶은 것이다.
‘동북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비롯해 8부작으로 구성된 소설집은 형식이나 문장에서 종전과는 다른 다소 어색함이 읽힌다. 이에 대해 작가는 “문학의 미학적인 부분을 조금은 희생하더라도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60년 가까이 소설을 쓰다 보니까 이런 형식으로도 글을 다룰 수 있었다”며 “소설이라는 것이 별것이겠습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지”라는 말로 형식을 초월한 소설쓰기에 대한 생각을 들려준다.
1932년 음력 2월 9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오는 13일로 팔순을 맞는다. 1950년 우리 나이 열아홉 살에 6.25가 일어나자 인민군으로 징집돼 내려왔다 강원도 양양에서 포로가 됐다 풀려나 고향에 잠시 머물던 중 그해 겨울 원산철수 때 단신으로 월남했다. 1955년 황순원에 의해 ‘탈향(脫鄕)’과 ‘나상(裸像)’이 잇달아 추천되면서 문단에 나와. 1961년 ‘판문점’으로 현대문학상을, 이듬해인 1962년 ‘닳아지는 살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그후 주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해방공간에서의 남북 현실과 전쟁, 그리고 분단을 소재로 소설에 천착하면서 분단문학의 거장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다.
팔순의 그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직접 체험한 문단의 이면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3일 서울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들려준 미당 서정주와 관련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의 에피소드다. 참고로 그는 반세기도 더 지난 일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
“1957년 명동의 술집에서 우연히 미당을 만났어요. 그래 술 마신 객기도 있고 해서 미당이 지은 ‘무등을 보며’, ‘상리 과원’, ‘산중문답’을 내리 암송하지 않았겠어요. 아, 그랬더니 미당이 내게로 와 두 귀를 잡더니 ‘네가 내 자식이다’ 하면서 입을 맞추고는 혀를 들이밀지 않겠어요.” 이로써 미당은 이호철의 첫키스 상대가 됐고, 그 날 미당은 작가의 삼선동 하숙집까지 따라와 자고 갔다고 한다.
“미당과 동리선생 팔순잔치에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가 그 나이가 됐으니...”
작가의 팔순을 기념하는 자리가 1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날 발족하는 ‘(사)이호철문학재단’(이사장 이근배)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헌정되는 기념문집 ’큰산과 나‘에는 최일남·한말숙·이어령·신봉승·한승헌·정수일·박석무·송영·정호웅·윤영수 등 문인 87명의 글을 모았다. 그가 아끼는 후배 김승옥도 병중임에도 원고를 보내왔다고 한다.
다음 달 8일 ‘남녘 사람 북녘 사람’이 번역, 출간되는 헝가리를 방문하는 작가는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고양시 선유리에서 ‘소설 독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