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 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다. 집이 지방이라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집에 가자는 거다. 그 시절에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라 내심 기대반, 불안반의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는데 집안에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신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아내의 외할머니셨다.
자취하는 손녀를 돌보아주시려 오셨단다. 넙죽 절하고 물으시는 말에 답하고 그렇게 처가 식구 중에 맨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분이었다. 이후 할머니는 나의 훌륭한 팬이자 후원자가 되셨다. 무엇이든지 나의 편이셨다. 결혼 생활을 군에서 시작했는데 휴가 때 뵈면 모아두셨던 용돈을 남몰래 건네주시기도 했다.
큰아이를 낳고 첫돌이 가까워 졌을 때 서울에 증손녀를 보러 가신다며 갖은 선물을 꾸리시던 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뇌졸중이었다. 이후 한 번도 서울에는 올라오지 못하시고 투병생활을 하다 약 1년 후 돌아가셨다. 지금도 그 인자하신 얼굴이 가끔씩 떠오르곤 한다.
이렇듯 예고 없이 한순간에 모든 사랑과 희망을 앗아 가버리는 것이 뇌졸중이다. 2009년 통계청의 사망 원인 자료를 보면 뇌혈관 질환이 2위를 차지한다. 특히 환절기에 조심해야할 질환이 바로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뇌질환이다.
한 대학병원의 뇌건강 센터가 환자 900명을 조사해 봤더니 기억력 감퇴나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사람 가운데 81%가 뇌질환 진단을 받았고, 두통,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가운데 71%가 뇌질환이었다. 반면 별증상이 없는 사람은 61%만 뇌질환 환자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74%가 뇌질환 진단을 받았는데 이중 뇌경색, 뇌 위축이 절반을 넘었다.
뇌혈관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고혈압이고 이어 고지혈증, 당뇨, 심장질환 및 흡연 등이 줄을 잇는다. 뇌혈관 질환은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의 파열로 발생하는 뇌출혈로 분류되는데 이중 80%이상은 뇌경색이 차지한다.
뇌경색은 의학적으로 4단계로 나뉜다. 그 첫째는 일과성 뇌허혈성 발작으로 24시간 내에 저절로 회복되는 신경학적 결손, 즉 반신마비, 언어부전 혹은 의식 장애 등을 말하며, 두 번째로는 가역적 신경학적 결손으로 발생 48시간 내에 회복되는 질환을 말하는데 특히 심장질환 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세 번째로 진행성 뇌경색으로 증상의 개선 없이 진행되는 것을 말하며, 치사율이 매우 높은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고정형 뇌경색으로 진행도 회복도 안 되는 유형을 말한다.
이중 제1형의 환자는 치료를 안 하면 1개월 내 약 50%에서 제3 혹은 4형이 발생한다고 돼 있다. 뇌출혈은 뇌경색과 같이 비슷한 기전을 가지고 있으나 뇌동맥 혈관의 파열로 증상은 매우 급박해 수 시간 내에 의식의 변화 및 신경학적 결손을 보이며, 1개월 내에 약 80%의 치사율을 보일 만큼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근래에는 의학의 발전으로 뇌졸중 치료의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방적인 사항으로 원인이 되는 질환의 치료가 선행되어야 하고 스트레스를 피해야 하며, 두통, 어지러움, 언어이상, 팔다리 저림 혹은 약화 등의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진단을 받아야 한다. 특히 신경학적 결손의 발생 3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막힌 혈관을 재관류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진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바람과 계획이 있게 마련이다. 조그마한 관심과 정성으로 이러한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아마도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줄지는 않을지.
전현길 삼육서울병원 신경외과 주임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