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는 나의 것’(2002), ‘지구를 지켜라’(2003), ‘더 게임’(2007), ‘박쥐’(2009).
이런 화려한 필모그래피는 배우 신하균(37)의 이름을 영화계와 대중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이 강렬한 영화들에서 독하거나 모자라거나 또는 독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 다중적인 인물을 연기해온 탓에 그는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광기 어린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꼽히곤 한다. 워낙 개성이 강한 인물을 많이 해오다 보니, 튀지 않고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그에겐 오히려 낯설었던 모양이다.
최근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곧 개봉하는 영화 ‘고지전’에서 맡은 ‘강은표’ 역할이 자신에겐 도전적인 과제였다고 했다.
“한국전쟁의 동부전선에 투입된 방첩대 중위 강은표는 엄청난 전투를 통해 ‘악어중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 친구 ‘김수혁’(고수)을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영화를 끌어나가는 서술자에요. 길고 긴 전쟁에 환멸을 느끼지만 뭔가를 바꿀 수는 없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어찌 보면 그 시대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사실 인물 자체로는 표현할 게 별로 없어서 쉬운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만으로 관객을 몰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에요. 저에겐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의형제’,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이 세 번째로 메가폰을 잡은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고지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을 썼고 TV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주목받은 박상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전쟁이란 소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익숙하기도 하고 많이 소모됐기 때문에 더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익숙한 소재를 새로운 관점으로 담고 있습니다. 단지 비주얼이나 화려한 전투 장면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전쟁의 아이러니,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아이러니함을 보여줘요. 한 민족이 같은 언어를 쓰면서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전쟁에 나가서 서로 죽여야 하는,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오고 그렇다고 웃지는 못할 그런 지점을 보여주는 영화여서 좋았어요. 배우로서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고요.”
그는 이전에 남북분단을 소재로 한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에 출연했지만, 전투 장면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폭발물이 많고 진짜 총을 쓰니까 위험하기도 하고 굉장히 무서웠어요. 공포탄이지만 뒤에서 한꺼번에 쏴대면 정신이 없어져요. 가까운 거리에서 쏘면 크게 다칠 수 있죠. 무섭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다행히 몸을 잘 사렸죠(웃음).”
그동안 박찬욱, 장진 등 명감독들과 여러 작품을 함께 한 그에게 자신이 배우로서 가진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강점이 특별히 없는 배우 같아요. 아직 크게 발전한 것 같지도 않고 처음이나 지금이나 항상 제자리인 느낌이에요. 그래서 내 작품을 자신감 있게 못 보는 편이에요. 시사회에서는 늘 두려워서 한 번도 어깨 펴고 본 적이 없어요. 놓치고 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많고 촬영할 땐 아직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자꾸 보여요. 어릴 땐 연기라는 게 ‘툭’ 하면 ‘툭’ 하고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많이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사실 완벽한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연기를 반복하면서 다듬어갈 수 있는 연극과 달리, 영화는 한 번 찍어버리면 끝이고 길이길이 남으니까 더 치열하게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서글서글한 눈매에 큰 눈망울, 웃을 때면 크게 치켜 올라가는 입가는 천진난만한 느낌이 들지만,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인상을 준다. 내면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알고 보면 유쾌하고 평범한 성격인데, 강렬한 역할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제 성격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연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인간에 대해, 특히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데, 설명하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나도 나에 대해 잘 모르겠고 절대 선하지도, 절대 악하지도 않은 게 인간인 것 같아요.”
1998년 데뷔해 2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으니, 상당히 다작을 한 셈이다.
“쉬는 기간을 잘 못 견뎌요. 많이 무기력해지죠. 살면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간이 일할 때여서 그게 몸에 밴 것 같아요. 이번에도 촬영 끝나고 두 달 정도 쉬었는데, 또 새로운 영화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적지 않은 여성 팬을 보유한 그에게 결혼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기회가 안 생기네요. 사실 적극적인 노력을 안 해요. 딱히 계획이 있거나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요.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처럼 살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