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이규경(李圭景 1788~?)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동국(東國) 제일의 인재가 누구냐 하는 다음과 같은 인물평이 나온다.
퇴계의 이황의 덕(德), 읍취헌 박은의 시(詩), 간이 최립의 문(文), 반계 유형원의 경륜(經綸), 충무공 이순신의 도략(韜略), 청음 김상헌의 절의(節義), 남이의 무용(武勇), 화담 서경덕의 천문(天文), 박연의 악학(樂學), 사계 김장생의 예학(禮學), 북창 정렴의 선술(仙術), 원교 이광사의 필법(筆法), 하서 김인후의 풍채(風采), 규암 송미수의 효행(孝行) 등이 그것이다.
이규경이 열거한 위의 인물들은 대개가 조선 중기 이전 사람들로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인물평이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더군다나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선비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 한 네 가지 기준을 이르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네 가지 기준에서 유래했다.
‘당서(唐書)·선거지(選擧志)’에 ‘무릇 사람을 가리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이니 풍채나 외모가 풍성하고 훌륭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이니 언변이나 말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이다. 셋째는 서니 글씨체가 굳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넷째는 판이니 글의 이치가 우아하고 뛰어난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추고 있으면 뽑아 쓸 만하다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당 주호영 인재영입위원장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물갈이’ 비율이 40%대로 예상된다고 언급해 당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주 위원장은 특히 물갈이 대상으로 ‘존재감 없이 피로감을 주는 영남권 의원’을 거명한 것으로 알려져 영남권 중진들의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영남에 친박(親朴)계 인사가 많다는 점에서 이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친이(親李)계가 주도한 ‘친박계 공천 학살’의 악몽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 일각의 총선 대폭 물갈이론에 대해 이번엔 김정권 사무총장이 나섰다. “대폭적인 물갈이는 없다. 대신에 다선이나 고령인 분들이 스스로 희생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친(親)서민 정책의 노력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 내년 총선에서 140~150석은 문제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을 순전히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