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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 우산, 깜장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득한 풍금소리와 함께 귓가에 맴도는 추억의 동요 ‘우산’이다.

중국에서 우산의 역사는 오래됐다. ‘사기(史記)’에 보면 우산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춘추시대 유명한 공예가 노반(魯班)의 아내가 손으로 드는 우산을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 우산은 비단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비싸고 귀해 왕실 귀족과 승려들의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후 당나라 때 비로소 종이우산이 민간에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전해졌다. 18세기 영국으로 건너간 비단과 레이스로 만든 양산은 아주 인기가 있어 귀족 부인들이 몸에 지니는 필수품이 됐다. 그러나 그 때의 양산의 무게는 무려 4.5kg이나 돼 실용적이질 못했다.

우산의 영어 표기인 ‘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유래됐다.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에서도 우산(정확히는 양산)은 ‘천상의 여신’ 누트(Nut)를 상징해 귀족들만이 사용할 수가 있었다. 또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우산을 나약한 물건으로 여긴 반면에 그리스 여성들은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전유물로서 일 년에 한 번씩 아크로폴리스에서 열리는 파라솔 축제에 참가했다.

오늘날과 같은 우산을 대중화시킨 사람은 1750년 경 러시아와 극동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영국의 조너스 한웨이라는 사람이다. 18세기까지 주로 여성의 액세서리였던 우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한웨이는 30년 동안 늘 우산을 들고 다녔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외출할 때면 항상 우산을 갖고 다녀 사람들에게서 호모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이런 그의 우직한 노력으로 차츰 사람들은 우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그 결과 나약함의 상징이었던 우산은 영국 신사들게 사랑 받는 물건이 돼 ‘한웨이즈’라 불리게 된다. 현대식의 박쥐 형태 우산도 바로 한웨이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우산이 생산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우산이나 양산은 죄다 수입품이다. 대부분의 우산은 중국에서 들여온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한 7천199만 달러어치의 우산(양산 포함) 가운데 중국에 지급한 금액이 6천896만 달러였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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