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동계올림픽 3관왕이었던 ‘토리노의 영웅’ 쇼트트랙선수 안현수가 러시아국적을 취득해 이제부터 러시아 대표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당시 안현수의 빼어난 기량과 투지를 보며 환호했던 한국국민들로서는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자신과 부모, 조상들이 태어나 대를 이루며 살아온 나라 한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를 택해야 했을까?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에서 “어차피 한국에 와도 자기한테 그동안 해온 것을 보면 막다른 선택이었을 것이다”며 “러시아에서는 모든 부분에서 선수를 위해주니까 마음이 기울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현수는 무릎 부상으로 지난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파벌 논란에 휩싸여 고통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소속팀 성남시청도 해체되는 등 충격을 맛봐야 했다. 아버지 안씨의 말처럼 한국의 모든 상황은 안현수를 막다른 선택 외에는 할 수없게 만들었다. 안씨는 한국빙상연맹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현수가 다쳤을 때 아무런 지원도 없고, 오히려 현수가 대표 선발전에 뽑히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선발전 내용도 어느 정도 다 알고 있더라”는 불만은 한국빙상계의 심각한 현실이다. 결국 곪을 대로 곪아온 빙상계의 파벌싸움이 ‘100년만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실력의 선수’(전이경 해설위원)를 나라밖으로 내밀어 버린 것이다. 빙상관계자들은 깊이 반성할 일이다. 반면 러시아는 선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마음 편하게 운동하게 해주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한다. 안선수에게 전담 의사까지 붙여줘 항시 몸 상태도 체크해 주고 있어 마음 놓고 열심히 운동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한국으로서는 아깝지만 당사자로는 잘된 일이다. 안현수 말고도 다른 나라로 귀화하는 선수들은 꽤 많다. 재일동포 추성훈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한국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편파판정과 차별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귀화했다.
지난 10일 열린 한-일축구전에서 뛴 이충성, 양궁 엄혜랑, 엄혜련 자매도 일본으로 귀화했다. 이밖에 양궁의 김하늘은 호주로, 여자하키 신미경 강명순 등 6명이 아제르바이잔으로 집단귀화한 일도 있다. 이들은 모두 기량이 검증된 선수들이지만 파벌과 왕따, 비인기종목의 고충 등의 이유로 ‘외국인’이 됐다. 이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최고의 선수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한국국적을 버릴 때 느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