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에서 시작된 전세대란이 서울의 다른 지역과 수도권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자고나면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전.월세 세입자들이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른바 ‘전세 유민’이 주변 지역 전셋값까지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서만 모두 5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의 핵심은 ‘전월세시장 안정화’였다. 하지만 정책을 비웃기라도하듯 전셋값은 부르는게 값일 정도라고 하니 서민들의 삶은 이래저래 주름만 깊어갈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올 가을 이사철에는 이보다 더 큰폭의 상승이 예상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비상’수준이다.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채 책상머리에서 대책을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한다.
전세대란의 원인은 부동산 시장도 알고 정부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한마디로 수급불균형이 문제다. 주택경기 침체로 수요자들은 주택 매입보다 전세를 살면서 관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셋값이 거의 집값의 절반에 도달했지만 집값이 내릴 가능성도 있는데 굳이 집을 살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세 수요가 공급을 훨씬 앞설 수 밖에 없다. 과거 주택공급정책의 잘못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지역 66㎡(20평형) 이하 소형아파트의 전셋값 상승률은 0.73%로 이보다 큰 면적의 0.65%보다 월등히 높다. 전세대란이 특정 면적의 주택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융시장 불안도 전세대란과 무관하지 않다. 주택 소유자들은 시중금리가 낮다보니 전세보증금을 받기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 도심에서 점점 먼거리로 값싼 전셋집을 찾아 이주를 거듭하는 ‘전세 유민’이 급증하는 이유이다.
정부는 강남지역에서 시작된 전세대란을 일부 대단지 아파트의 재건축 추진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재건축사업은 추진부터 마무리까지 수년이 걸린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앞으로 적어도 2년 이상은 전세대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집이 없어 남의 집에 전세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일시적 현상이니 그냥 견뎌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주문으로 들릴 수 있다. 정부는 전세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서둘러 공급위주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세난의 골자는 공급부족이다. 주택수가 모자라 빚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대형 전세나 소형 월세는 넘친다고 한다. 이를 보면 정책 잘못이 크다. 서울 강남지역 전세 매물이 거의 사라져 한달새 1억원이나 오른 전셋집도 있다고 하니 도저히 상상이 안되지만 이것이 주택시장의 실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