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茶馬古道)’는 이름 그대로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이 교역되었던 길이다. 이 길은 중국의 윈난(雲南), 쓰촨(四川)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로 이어지는 장장 5천㎞에 이르는 실크로드보다도 200년이나 앞서 열렸던 문명교역로였다. 해발 4천m가 넘는 황량한 고원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이들이 이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노새를 몰고 가당찮은 노역(勞役)의 결과물인 이 차마고도를 목숨을 걸고 넘나들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경북 울진군 북면 십이령에 보부상 옛길이 나있다. 열 두 고개가 시작되기 전 징검다리를 건너면 작은 비각이 눈에 띈다.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다. 조선 후기 울진과 봉화의 내성장터를 왕래하던 행상 우두머리(行首)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철비(鐵碑)다. 보부상들은 울진 특산물을 지게에 싣고 봉화까지 3박4일 동안 꼬박 60㎞를 걸었다.
보부상의 삶을 문학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소설가 김주영(72)이다. 그는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장장 1천465회에 걸쳐 모 일간지에 ‘객주(客主)’를 연재했다. 그리고 9권의 책으로 엮었다. 객주를 쓰기까지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도 화제가 됐다. 보부상과 관련된 자료 수집을 위해 5년 가까이 전국의 장터를 누볐다. 충남 강경에서는 선착장 사람들에게 간첩으로 몰려 몰매를 맞는 등 수난도 적잖았다.
김주영은 문단에서 ‘김 주사(主事)’로 통했다. 호구지책으로 취직을 한 안동엽연초생산조합 주사로 있으면서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에 ‘여름사냥’이라는 단편을 들고 등단한 까닭이다. 경북 청송군 진보면이 고향인 김주영은 초년고생이 심했다. 불우한 가정사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그는 스물한 살에 일찍 장가를 들었다. 주사 체면도 없이 “늦게 가믄 얼마 몬 할 것 같아서”라며 이른 장가를 든 이유를 둘러대던 김주영은 경상도 방언을 탁월하게 작품으로 소화해 냈다. 이러한 토속어에 대한 문학적 성취는 역시 충청도 방언을 질박하게 되살린 동년배의 이문구와 곧잘 비교되고는 했다. 김주영이 ‘객주’의 속편을 집필한다. 속편의 무대는 십이령 보부상길이다. 그는 이 길을 작년에서야 알았다. 울진군도 그를 위해 집필실을 마련해 주는 등 물심양면이다. 내년 말을 예정으로 근 30년 만에 돌아오는 ‘객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