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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추분소회(秋分所懷)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이 지난 23일부터 시작됐다.

지난 여름을 떠올리자면 하늘과 땅을 맞붙이기라도 하려는 듯 퍼붓던 장마를 제일 먼저 기억하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던가? 선들거리는 바람은 비구름을 다 몰아내고 쪽빛 하늘을 돌려준다.

들녘에 쌓여있던 초록이 서서히 풀이 죽는가 싶더니 모르는 사이 추분을 맞이했다.

어제 아침 산책길에서 수련을 꼭 닮은 고마리가 안쓰럽게 떨고 있는데 자귀풀은 벌써 꼬투리가 여물어간다.

얼핏 보기에도 추분이라는 말은 가을을 나눈다는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어느 한 쪽이 적거나 모자람이 없이. 추분에는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다고 익히 알고는 있지만 사실은 여광(餘光) 때문에 보통 낮이 더 길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느 쪽도 손해 보는 느낌이 아닌 공평하게 나눠졌음을 서로 인정하고 서운한 마음 한 점 없이 매듭지어지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날씨도 좋고 결실의 계절이라 그런지 무언가 나누려는 마음이 들고 소식이 뜸하던 지인들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맘때 논에서 벼를 베는 날 논두렁 옆 나무그늘 아래 점심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좁은 자리에 기어이 불러 앉혀 들밥을 나누고 막걸리 한 잔에 담배까지 나누던 모습이 사라져 농촌의 인심이 각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그 모습은 어김없이 재현된다.

이상기온 탓에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인 운악산 포도가 제 맛이 나지 않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애써 농사지은 포도를 맛보라고 권하는 소리와 고맙다는 인사로 가판대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있어 가을을 더 아름답게 한다.

나눠서 좋은 것이 어디 물질 뿐이라고 하겠는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기는 하나 사돈지간을 일컬어 자식을 나눠 가진 사이라 비록 예(禮)로써는 삼가하고 조심해 어려움이 있으나 오직 자식들의 앞날을 염려하는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누어진 자식들이 합일을 이루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번성한다.

그러고 보면 사돈집과 화장실은 멀어야 한다는 말도 삶의 깊은 맛을 외면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사돈들끼리 여행도 다니며 최근에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돈이 있으면 김장하는 날이 잔칫날이 되는 진풍경도 있다.

사돈끼리 고기며 해물이나 술 등 다른 먹거리를 준비해서 합동으로 김장을 하는데 줄을 서있던 김치통마다 속을 다 채우고 제 짝을 찾아 뚜껑이 덮이고 나면 김장속보다 더 붉은 사돈들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더 가져도 그만이고 덜 가져도 그만인 충만한 기쁨으로 새로운 풍속도를 그린다.

우리 삶을 파고드는 어두움이나 절망을 극복하는 길을 나눔을 통하지 않고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단 절대로 나눠져선 안 되는 것으로 가정의 해체와 국토 분단을 빼고는….

/정진윤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現)가평 문협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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