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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

 

가을도 이제 끝자락에 이르렀다. 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내게 있어 올 가을은 갑자기 들이닥친 느낌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겨 그 일을 수습하느라 온 정신이 쏠려 일상의 흐름을 잃고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숨 돌리고 되짚어 보니 지천명을 넘기고도 이렇게 마음에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바람에 억새풀이 흔들리는 모습이 깊어 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한껏 푸른 하늘에 떠서 흔들리는 빨간 애드벌룬에 새겨진 분양이라는 흰 글씨는 한때 풍선보다 높이 올라갔을 건축업자의 꿈처럼 흔들린다. 대학에 다니다 오랜만에 집에 다녀가는 아들을 배웅할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드는 순간에도 가을이면 속맘은 또 얼마나 흔들리는지 아들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내가 먼저 발길을 돌리는 이유도 가을걷이를 끝낸 빈들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늙은 허수아비의 외로움 때문이라고 떠넘기곤 했는데 이도저도 모른 채 가을은 가고 있었다.

가을은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하리라고 짐작이 간다. 예전 같으면 하루하루 초록에 숨기고 있던 빛깔로 치장하는 단풍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감탄을 하겠지만 올 가을은 눈을 돌리니 은행잎이 물들고 알지도 못하던 사이에 억새풀이 하늘거렸다. 불현듯 쓸쓸함이 엄습한다. 하기야 가을이 쓸쓸한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랴, 아득히 선사시대로 이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시절에야 겨울이 오면 주린 속으로 추위와 싸우며 겨울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지는 모습만 보아도 뼛속까지 찬바람이 스며들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가며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쫓기는 일상에서 오는 허탈함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휴대폰 문자가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알린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 만나는 친구들은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면서 곱게 늙어 주어서 고맙다 거니 잘 살아줘 다행이라 거니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사회적으로 제법 성공한 친구도 있었지만 자식 키우며 사는 얘기들이 얼굴에 잡히는 주름처럼 자글거렸다. 배경이 좋다 싶으면 사진도 찍고 너래바위에 앉아 임원진이 준비한 김밥이며 간식을 먹다 아예 막걸리도 한 잔씩 했다.

그러고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친구들에게 오히려 다시 내려오라고 말도 안 되는 떼도 써본다. 잠시 주지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무심하리만치 모르고 지나온 우리 역사의 진실 앞에 숙연해기도 했다. 기우는 마음을 추스르기에 가을볕 한나절이면 충분한 것을 그렇게까지 울적해 했는지, 나를 짓누르던 무력함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단풍보다 고운 친구들의 웃음으로 물드는 운악산에...

/시인 정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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