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왔다. 명절이 되면 그 누구보다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많은 이들을 고향까지 안전하게 수송하는 직업을 지닌 기관사와 운전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경찰이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귀성길에 누구 하나 사고 없이 안전하게, 그리고 꽉 막힌 교통체증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끔 경찰관들도 바빠진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후 첫 명절을 맞이했을 때, 참으로 이 생활이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한가운데 교통체증으로 꼼짝없이 서 있는 차들을 원활히 소통시킨 후 차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손으로 건네는 감사의 인사를 받은 뒤 드는 뿌듯함도 잠시 뿐이었다. 너무나 보고 싶은 가족과 친지들 생각에 틈 날 때마다 고향녘 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온통 차들로 꽉 막힌 도로 속이지만 조금만 고생하면 보고픈 가족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차 안의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평온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 평온함을 나도 함께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곤 했다.
이제 경찰이라는 옷을 입은 지도 강산이 두 번도 더 지났다. 명절이 되면 늘 시골 고향집이 아닌 도로 위와 밤거리에 서 있어야 하지만, 더 이상 감상에 젖지는 않는다. 팔순 아버지께 이번에도 명절에 못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대신 휴가 때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리면 아버님께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에만 충실하라는 답변이 들려온다.
귀성길마다 반복되는 사건 사고들은 올해도 여지없을 거다. 정체길에 종종 일어나는 접촉 사고는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이들의 마음을 갈가리 부셔놓곤 한다.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으레 큰소리부터 지르며 멱살 잡는 사람들 때문에 사고 처리만으로도 복잡한 도로는 더욱 혼잡해져 이를 처리하느라 진땀깨나 쏟게 된다. 도로뿐 아니라 놀이공원과 같은 장소에도 연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매한가지다. 관내에서도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명절을 맞은 경찰관들은 낮만큼이나 밤에도 분주해진다. 고향에 내려가 비어 있는 집들을 노린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명절에는 순찰 근무가 더욱 강화돼 경찰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게 된다. 귀경길로 비어 있는 집들 사이사이로, 도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찾아온 집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고향집으로 훌쩍 떠나게 한다.
올해도 이렇게 순찰을 끝낸 뒤 집에 돌아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맡길 것이다. 잠을 이루고 나면 홀로되신 장씨네 집을 찾는다. 손자들의 재롱에 즐거워해야 할 나이이지만, 손자는커녕 명절이 돼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치매 노인의 집을 찾는 것으로 나의 명절은 끝날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조촐한 음식에 노인은 무척이나 즐거워하실 것이다. 명확치 않은 발음으로 끊임없이 말을 이어가는 그분을 보면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제외한 여러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고 계실 테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명절에도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실 것이 분명하다.
나보다 더 짧은 생이 남은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의 행복한 삶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낙일 것이다. 언제고 세상의 끈을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그들이기에, 한 번이라도 더 자주 자식들이 찾아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이 진정 바라는 효도일 것이다.
장씨 치매 노인에게도 이 땅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른 채 나 또한 고향의 어른들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장씨네 가족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설날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는 나에게도 치매 노인에게도, 장씨네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고향에 계신 팔순의 아버님이 보고 싶어진다.
/박병두 작가·경찰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