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9월 5일 대동강 쑥섬의 모래사장에서 영국인 청년 한 명이 조선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야소(예수)’를 외쳤다는 청년의 이름은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바로 한국 교회사상 첫 순교자인 토머스 선교사다.
토머스 선교사의 고향은 영국 웨일스 중부의 애버게이브니다.
이곳에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과 교회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토머스 선교사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전 재산을 투자한 미국인 스티븐 프라이스(67) 씨 덕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이곳에서 프라이스 씨를 만났다.
그는 “성령(Holy Spirit)의 인도로 토머스 선교사의 집과 교회를 발견하게 됐고 그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됐으며 그를 위해 여생을 보내게 됐다”며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씨가 토머스 선교사의 집과 교회를 발견한 건 2002년의 어느날.
여행 중 우연히 이곳을 발견한 그는 ‘집주인’의 사연에 흥미를 느껴 이런저런 자료 조사를 했고 곧 토머스 선교사의 삶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2009년 토머스 선교사의 집과 교회가 경매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결단’을 내렸다.
전 재산을 처분해 토머스 선교사의 집과 교회를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프라이스 씨는 현재 부인과 함께 토머스 선교사의 고택에 머물고 있다.
토머스 선교사가 머문 집과 교회를 개·보수하고 그의 뜻을 널리 알리는 게 프라이스 씨의 주된 일과다.
순례객을 맞이하는 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프라이스 씨는 “연평균 1천200여 명에 달하는 순례객이 이곳을 찾는데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들에게 토머스 선교사의 집과 교회를 안내하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원래 의사인 그는 기독교 봉사단체들과 함께 북한에 의료 봉사를 다녔던 경험, 그리고 토머스 선교사와 한국의 ‘인연’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집안에 걸어둔 한국 이름(서필수) 족자를 보여주며 “서울에 갔을 때 얻은 내 이름”이라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프라이스 씨의 꿈은 토머스 선교사가 순교한 대동강변에 그를 기리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는 1932년 평양에 세워졌던 토머스 선교사 순교 기념 교회가 남북 분단 후 파괴된 것을 거론하며 “이제 다시 그를 위한 교회를 세울 때가 됐다. 교인들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했다.
프라이스 씨에게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이 무엇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지 물었다.
“토머스 선교사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열정을 토대로 세상을 더 희망적인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