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사고로 며칠 손에 물도 안 묻히는 호사를 하게 됐다. 주방에서 가스 누출로 손에 2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게 됐다. 바쁜 생활에 쫓기듯 살다가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것저것 바라보는 것도 많아지고 그동안 밀어뒀던 책도 읽고 집 근처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남들이야 일을 하거나 말거나 게으르다는 봄이 유리창으로 햇빛을 몰아오는 모습을 보며 커피잔을 들고 좋아하는 싯귀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케이블 방송에서 해주는 인기 드라마 재방을 보기도 한다.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사고의 전말을 설명하기도 하고 혀를 차고 무릎을 쳐가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연발하는 사람들의 감탄과 위로 또한 심심치 않다.
집 앞에 장이서도 내다보지 못하다 모처럼 한가하게 장을 둘러본다. 얼마나 금슬이 좋았던지 죽어서도 끼고 누운 고등어와 못다한 연분으로 이제껏 얽혀 있는 낙지를 파는 생선장수와 볕이 드는 곳에서 쪽파를 다듬는 옷 장사 아줌마, 아침에 해장을 하면 하루 종일 술을 쫓아다니는 고추할아버지, 목소리가 워낙 커서 금방 거취를 알게 하는 구두수선 예비역 해병 아저씨, 목공예품을 팔며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고공행진이라는 기름값 생각하면 나오고 싶지 않지만 가만히 들어앉아 있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나온다는 그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리는 것은 하루에 얼마동안일까?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경제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읽는다. 예전에는 북적거리며 어깨를 부딪고 지나다니던 장터에 지금은 구경꾼보다 장꾼들만 웅성거린다. 할인 판매로 고객을 불러 모으는 대형마트와 사통팔달로 인접시내로 달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사람들을 외지로 빠져나가게 해 지역경제가 더 황폐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마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동차 전용도로 탓에 지금은 어렵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쓰고 언젠가는 이 지역에도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니 이 또한 새옹지마라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면 누구나 가기 싫은 곳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병원이고, 두 번째가 젊은 사람 그것도 가까운 사람 세상 떠난 장례식장이고, 마지막 가기도 싫고 가서는 안 되는 곳이 교도소라는 말이 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병원은 가기 싫어하는 곳 중의 하나다. 그곳을 매일 드나드는 일이 유쾌하진 않은데,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가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고 생각해 보니 눈썹과 머리카락까지 타면서도 얼굴은 말짱하니 이제는 새옹지마라는 생각은 끝내기로 했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에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느끼며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친다. 내일이면 또 만나게 되는 장꾼들과 하루의 노동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삶의 주인공들을 위해 꽃샘추위가 지나고 햇풀처럼 새살이 차올라 치료를 마친 손에 정을 담아 고봉밥을 퍼주고 싶다.
/정진윤 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