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투표일이다. 여야가 총선승리를 위해 ‘당명(黨名)도, 사람도, 정책도’ 바꾸며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또 선거기간 동안 후보들은 폭로전의 진흙탕 싸움으로 마다하지 않았고, 72시간 잠 안자기 등으로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를 치루는 동안 국민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정치인 모두가 국민을 앞세웠지만 정작 그들은 속셈은 표계산과 연말의 대선 등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판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지후보나 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여전하다. 또 혹자는 “그놈이 그놈이고, 찍어주면 딴짓할텐데 투표는 왜하냐”는 정치혐오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맞기는 맞는 말이다. 참신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국회로 보내 놓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최상의 인물, 가장 이상적인 인물을 뽑을 수는 없다. 그런 인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이 갖는 권능을 감안할 때 우리는 ‘덜 나쁜 놈’을 선택해야만 한다. 부패되는 속도가 가장 느릴 만한 인물, 양심상 국민의 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할 인물을 ‘도토리 키 재는’ 가운데 가려야 한다. 선거 때처럼 24시간 인사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지역민의 아픈 가슴을 풀어줄 인물,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래도 국민의 얼굴을 떠올리며 정책과 예산을 손질할 인물을 택해야 한다.
과거 역사는 투표의 무서움과 내 한 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932년 독일 선거에서 사회당의 참여거부는 전 세계적 비극을 낳는 단초가 됐다. 견제 없는 독재자 히틀러가 나치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집권에 성공한 히틀러는 곧바로 파시스트적 철권정치에 들어갔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인류사의 비극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고성에서 지난 2008년 실시된 고성군수 보궐선거는 한 표의 중요성을 알리는 세계적 토픽감이다. 당선자인 황모 후보와 차점자인 윤모 후보간 표차는 단 1표였다. 단 한 명, 바로 내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당선자의 이름이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드라마틱한 결과였다.
민주주의 전제조건은 참여(參與)다. 그리고 투표는 국민의 주권(主權)이다. 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한 불만의 가장 합법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표출수단은 투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월 11일, 투표합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