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을 방문해 탕약을 처방받는 중년의 환자들 중 대부분이 꼭 하는 말이 있다.
“살 안 찌게 해주세요.”
이는 예전에 못 먹던 시절 한약을 통해 살을 찌게 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살 찌는 것에 대한 이 시대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우리나라 여성의 95%가 의학적 정의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비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40-50대 중년 남성의 절반 가량이 의학적으로 비만에 속한다. 지난 10년간 비만 인구는 150%가 증가했으며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로 미용과 관련된 젊은 사람들의 비만은 논외로 했을 때 중년의 비만은 그것이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보다 큰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복부비만은 고혈압이 될 확률을 10배나 높이고, 간질환은 2.2배, 당뇨병은 1.8배 더 높인다. 또한 심근경색이나 협심증같은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경색이나 뇌출혈같은 뇌혈관 장애를 일으킬 확률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
각종 관절질환, 암, 여성질환도 비만과 연관되어 있다. 때로 40-50대 비만 환자들 중 자신의 체중 증가가 어쩔 수 없는 나잇살 때문이라고 말하며 애써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일과 후 잦은 술자리를 갖는 남성들에게서 이런 태도를 많이 볼 수 있다. 나잇살이란 중년이 되면서 신체의 노화로 인하여 체력과 기초대사량이 저하되면서 전반적인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 섭취량을 다 소비하지 못해 체중이 늘어나는 증상을 말한다. 이와같은 현상은 갱년기를 통과하는 여성의 경우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그간 복부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감소에 기인한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난 체중은 변화된 신체의 기능에 맞게 필요없는 지방을 덜어냄으로써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중년의 비만은 대부분 지방의 증가에 기인하고 또 늘어난 지방은 피하보다는 대부분 복부의 내장 사이에 끼어 오장육부의 기능을 왜곡하는 쪽으로 작용하면서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퇴근 후 한 잔’이 가장 큰 적이다. 자녀가 남긴 밥이나 반찬을 아깝다고 먹어치우는 주부들의 식습관도 버려야 한다.
갱년기의 우울감으로 인한 폭식과 군것질, 늘어나는 중년여성들의 음주문화도 비만공화국 건설을 추동한다. 비만을 극복해보고자 행하는 중년기의 다이어트는 체력이 떨어진 만큼 운동강도는 낮춰야 하고 대사능력이 떨어진 만큼 운동시간은 늘려야 한다.
광고에 소개되거나 시중에서 성행하는 무분별한 다이어트 방법은 대부분 노화를 촉진하고 신체 기능을 저하시켜 질병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일주일에 몇 kg을 줄인다’는 식의 과욕을 부추기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체력을 증진시키면서 체중을 줄여야 한다.그래야만 다시금 체중이 증가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있다.
비록 비만이 칼로리의 섭취와 소비의 불균형에서 오는 결과라고 하지만 그 원인을 개인의 나태한 생활태도에서만 찾고 의학적인 치료대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한 일이다. 과거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계층보다 하위계층으로 내려갈수록 비만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비만과 경제적 불안정성과의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영양가 없고 칼로리만 높은 값싼 정크푸드의 섭취.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식생활의 교란, 여가시간의 부족 등으로 인한 비만은 개인만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성인 비만으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비용이 3조 4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더 이상 비만문제를 개개인의 생활 태도의 교정이나 의학적 치료의 범주에만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비만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종합적 접근이 시급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