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6월 15일)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지 닷새 째가 됐어. 그동안 지켜봤겠지만, 사흘 동안 당신 장례를 정신없이 치루고, 오늘 오전에는 당신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왔어. 당신을 떠나 보낸 후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기는 쉽지가 않네. 아무리 애를 써도 가끔씩 숨을 쉴 수 없게 목이 메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봐. 어제 밤에도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당신 생각이 나서 한바탕 고생을 했어. 그렇게 푹신하던 안방 침대도 편하지가 않아. 자다가 온몸이 굳어지고 아파서 잠이 깨. 오히려 당신 곁에서 쭈그리고 잘 때가 더 편했나봐...
너무 괴로워. 당신이 나를 용서해 줘야 맘이 편해질 것 같은데, 당신을 만날 수가 없어. 아니, 당신이 용서를 해줘도 나 스스로 용서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어제 당신이 침대 옆에 두고 썼던 메모장에서 당신이 남긴 글을 봤어. 이미 세상을 떠날 각오를 하고 더 이상 삶에 애착이 생기기 전에 떠나고 싶어하던 당신. 난 그런 당신을 붙잡고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며 닦달을 했던 거였어. 내가 닦달하는 것이 무섭다고 흐느끼던 당신을 보면서도 왜 당신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는지... 여보, 미안해. 미안해. 정말정말 미안해. 용서해줘. 잘못했어. 못된 내 욕심이었어. 당신을 하루라도 더 붙잡고 보고 싶어서 당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어.
난 그렇게 바보같이 6개월을 보냈어. 그리고 당신이 커피를 마신 후, 마지막으로 먹고 싶었던 것이 커피였다고 한 후, 그리고 “이제 그만하고 싶어?”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을 본 뒤에야 겨우 잘못을 깨달았어. 그동안 당신이 몇 번이고 너무 힘들다고 했을 때 왜 당신 마음을 몰랐는지... 난 그렇게 바보같이 당신을 힘들게 한 나쁜 남편이었어... 여보, 정말 미안해 미안해....
이런 바보같은 남편과 달리 우리 애들은 참 잘 견디고 있어. 똑똑한 서현이는 눈에 슬픔이 가득 고여 있는데도 표시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아. 서현이에게 이번뿐 아니라 지난 세월동안 엄마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런데도 엄마가 너희들과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를 이야기해 줬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떠났지만, 그런 엄마의 노력을 헛되게 해서는 안되고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우리끼리 있을 때는 당신이 보고싶어 슬퍼지면 마음껏 울자고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늘 먼저 우는 건 나일 것 같아. 여보, 서현이 헌수는 당신을 추모의집에 모신 날 저녁에 집으로 데려와 지금까지 같이 지내고 있어. 내일 다시 처제집에 데려다 주고, 다음주말에는 아이들과 캠핑을 가볼까 해. 병원에서 힘들거나 슬픈 감정이 가슴을 헤집고 올라올 때 밖으로 나가 큰 나무 밑에 있으면 좀 가라앉았던 것 같아서 산으로 가 보려고...
여보,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이 보고싶은 마음이 더 진해지겠지?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 조금씩 사람들에게 기대야겠어. 내가 그걸 잘 못한다는 걸 당신이 잘 알고 있겠지만, 걱정마. 이번에는 좀 기대려고 노력해 볼게. 기대는게 잘 안되더라도 끝까지 견뎌볼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다 클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