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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오현규"쿼바디스 도미네!"

 

바디스인류가 살아가는 역사와 함께 우리에게 기억되는 많은 대작의 영화들이 있다. 벤허, 엘시드 징기스칸, 클레오파트라, 알렉산더 대왕, 우리 영화로는 주몽, 대조영, 용의눈물, 연개소문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오늘의 사회상에서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독자들에게 메세지를 통해 함께 고민하며 호소하고자 하는 논제를 전할 영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바로 분명한 계시가 있고 사회의 등대가 될 영화는 기독교적인 소재로 제작된 감명 깊은 영화인 <쿼바디스 도미네>이다. 로마의 라틴어인 Quo Vadis Domine!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말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으로,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말보다도 오히려 <쿼바디스>라는 영화나 소설로 더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 필자는 본 주제를 기독교적인 교리로 연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이념의 중심이 혼돈되고 가치 척도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판단이 흐려지고 있어 이를 외면할 수가 없어서다. 사회지도층이라는 계층에서 세치의 혀로 무한정 뱉어내는 말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준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헛갈리게 된다. 방황하는 전파는 SNS의 위력 앞에 그 누구도 제어되질 못하고 있는 현실을 독자들의 마음의 신(神)들에게 호소해 보는 것이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쿼바디스는 1896년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에 의해 쓰여졌고, 영화 쿼바디스는 1951년에 머빈 르로이 감독에 의해 제작됐다. 명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커가 열연해 그 해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고전 명작이다.

때는 AD 65년경,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는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고 시적(詩的)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로마 시에 불을 지른다. 엄청난 화재로 인해 시민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위기감을 느낀 네로는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방화범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해 누명을 씌우고 잔악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기 시작한다. 이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교리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 사회의 모순된 갈피를 연계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회전축도 없이 난무하는 북한에 의한 이데올로기에 국가의 정체성의 기준이 무엇이 맞는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이때, 종북이다, 아니다, 너는 배신자다,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눠진 이념으로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열차의 레일 같이 무한정의 달림은 국민들을 어디로 인도할 지 사회적 기준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마치 방황하는 불나비 같은 세파라 할 수 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사안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청소년들의 왕따에 따른 자살, 아버지 눈앞에서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 그 부모는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약한 자들이 도로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해도 외면해야 만하는 현실이며, 욕구충족에 맞지 않으면 무작정 살해하며 죄 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우리의 슬픈 현 사회에 ‘쿼바디스 도미네 우리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됩니까?’ 외쳐 본다. 더욱 마음을 짠하게 하는 것은 그 동안 현실에 냉험할 정도로 사회에 선명선을 부르짖던 무언의 종교인들이다. 침묵으로 임하는 현 사회의 모습은 메세지를 울려줘야 할 사회지도층인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을 비롯한 사회적 계시는 간 곳 없이 모든 것이 대권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베드로가 현실도피하기 위해 로마를 떠나갈 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들어 가라는 ‘계시’에 되돌아 와 죽음을 맞이하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한 쿼바디스를 종교적 문제를 떠나 현사회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 작열하는 태양이 무엇을 비춰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추념의 타임머신의 열차를 타고 제로베이스부터 다시 출발해야만 되는 것인지 판단해 보아야 될 것이다. 그래도 2012년 새해 첫날 우리나라의 끝자락인 남해 항일암에서 지평선 위에 구름과 함께 떠오르던 해돋이의 그 장관에서 기원했던 소원이 결코 저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기대해 본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대한민국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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