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밤이었다. 새벽잠을 깨우는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주일인 데다 휴식을 취하고자 했지만 부고 소식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 나간 경찰관 경호원 최경민의 부친상이었다.
후배가 아프가니스탄에 간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가족들을 남겨둔 그는 뜻한 바 있어 위험한 지역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후배를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었다.
팀장, 파출소장을 하면서 필자는 후배를 끔찍하게 사랑했고, 그 또한 필자를 정겨운 형처럼 온몸을 다해 대해주었다. 그와 같이 일했을 때, 역전에 불량배며 폭력사건 등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수습하다 보면 아침이 오고 지칠 만도 한데 그는 주어진 책임을 완수했다. 그런 그는 누가 봐도 철인처럼 느껴지곤 했으니, 아마도 그의 철인 근성은 건장한 체력관리와 정신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경찰특공대에서 오래 근무한 그는 경찰경호원으로 또 현장 경찰관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문학을 하는 필자는 늘 현실에 부족함이 따랐고 법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터라 적지 않은 갈등도 했었다. 그런 필자는 치안정책을 기획할 때 늘 동생 같은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나에게 고마운 멘토였다.
전주 장례식장에 가는 열차의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겨를도 없이 빗방울들이 내 심장을 파고들었고, 후배 생각이 깊어졌다.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후배가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먼 땅에서 아버지의 비보를 듣고 슬퍼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쓰렸다. 발인이 지나서야 도착하게 될 후배의 심사를 그려보니 차장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내 시야는 흐려졌다.
전주 장례식장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후배 아버님의 영전에 꽃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입관절차를 밟은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후배가 없는 자리지만 문상객들이 그 자리를 함께 지켜서 위로가 되었다. 제수씨, 그리고 그의 두 아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후배 어머님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후배의 형제들은 3형제가 경찰관이다. 큰형은 충남 논산에서, 동생은 인천에서, 후배는 경기도에서 근무하다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것이다. 후배는 태권도와 합기도 공인 유단자이고, 오랜 전 일본에서 열린 격투기 경기까지 출전한 바 있는 무도관이다. 그는 마음이 정결하고 깨끗한 무인이다.
그런 후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친께서는 오랫동안 뇌경색으로 고생하시다가 운명하셨다. 좀 더 살아계셔 주실 것을 기도했던 그의 바람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망해할 후배를 생각하니 마음이 천금만근 무겁기만 하다.
마음이 여린 내게 늘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후배, 그와 나는 이심전심이었다. 주민을 위한 사람 중심 치안을 꿈꾸기 위해 호흡을 함께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했었다.
두 아들은 그런 후배를 쏙 빼닮았다. 필자는 건강해 보이고 씩씩하면서도 예의도 바른 두 아들을 안아주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술 한 잔이 생각났지만, 월요일 강의 준비 등 수원까지 이동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술잔을 기울일 수 없었다.
술 취한 취객, 도무지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그는 소화해냈다. 그래서 강력사건이거나 민원발생 소지가 있는 사건들은 후배에게 맡겼다. 돌아보니 참 고달프고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 내색하지 않고 업무를 처리해준 후배가 고맙기만 하다. 이런 경찰관이 있기에 나는 경찰에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바람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그 바람은 친구이기도 하고 고독한 내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후배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에도 한 줄기 바람이 불고 있을까? 후배가 바람처럼 재빠릴 날아와 부친의 마지막 가시는 그 길을 지켜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배 부친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