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각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의식도 같아지게 마련이다. 요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내게서 가끔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생각이나 일의 정점에서 더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어진 대로 안일하게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이웃 도시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좋은 강좌가 있다고 지인에게 문자가 왔다. -00문화센터 00강좌 내일 00시 출발, 연락바람- 금방 가겠다고 답을 보낸다. 오랜만에 만나는 문학후배들이다. 항상 무언가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그녀들이다. 강좌 제안에 동의하면서 만난 그녀들은 여름방학동안 비어있는 시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중이라고 한다.
그녀들은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Y의 진취적인 성향은 우리들에게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방송통신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외국어 학원을 경영하다가 더 공부해야한다며 잘나가는 학원을 접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러더니 요즘같이 취직이 어려운 시기에 고등학교 계약직 선생으로 취직이 돼 대학원 공부와 겸하고 있는 그녀. 가녀린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지 우린 만나서 대화를 하는 중에 그녀에게 힘을 받기도 한다. 이번 일을 추진한 J 또한 Y 못지 않다. 체격이 작은 편이지만 진취력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 조용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길 때면 어디서 그런 발상이 떠오르는지 깜찍하리만치 새로운 생각을 내세워 일의 해결사가 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우리들의 또다른 토론장에서 벌어지는 그녀의 깜직 발랄한 상상은 우리들의 정체된 상상의 세계를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늘 새로운 일에 관심이 많고 꾸준히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녀의 생활이야말로 무한도전의 연속이다.
M은 항상 조용하고 소녀 같은 인상을 주고 얌전하다. 개성이 뚜렷하고 주관이 강해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학이던 직장이던 열심히 노력하고 가정에서도 반듯하게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최고를 지향하는 그녀다. 이름있는 문학상에 공모해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상을 타기도 하며 자신을 닦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넷이 만나면 각기 다른 외형과 성격이지만 무엇을 꾸준히 지향한다는 데서 바라보는 꼭지점이 같아진다.
하나 둘 자동차에 오르며 모두 반색한다. “이 기간을 어찌 보내나, 방황의 기로였어요. 어떻게 이런 기막힌 발상을요?” Y의 하이톤 목소리가 모두를 즐겁게 한다. 자그마하고 가냘픈 몸매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 지 때때로 그녀는 우리들의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방황의 기로라니, 와봐와봐. 매일매일 계획표를 짜자구, 내일은 조조영화 ‘도둑들’을 보고, 또 모래는 첫새벽에 카메라 한대씩 들고 나와 일출을 보자구, 또 다음 날은....” 작지만 박진감 넘치는 J의 제안이다. “하아, 왜들 이러세요. 진정하시고 하나씩 하자구요. 그렇잖아요. 새벽에 애들 챙겨야 되는데 일몰로 하는 게 어떨지요?” 차분한 M의 말이다.
강의는 꽤 신선감있고 알뜰하게 새로운 세계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그리스신화다. 2시간 강의를 듣고 나오는 발길이 가볍다. 침체된 늪에서 솟아나는 나를 본다. 각기 다른 그녀들 삶의 열정이 나에게 전염되는 것을 느낀다. 그녀들의 의식이 나를 百尺竿頭進一步하게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