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 타까미 쥰
이미 나는 땅 속에 드러누워 있다
이마빼기 언저리에 개가 똥을 싼다
좋아 좋아
새가 조그만 주둥이로 땅벌레를 쪼아댄다
땅속의 나도 어쩐지 근질근질하다
이제 그뿐이랴 내 가슴에
나무 뿌리가 가차없이 침입해오련만
나는 내 송장 위의
즐거운 경치를 몽상하고 싶다
고흐의 묘지처럼
꽃을 심어주지 않겠나
내가 오베르에 참배했을 때
팬지꽃이 피어 있었지
묘지 옆 고흐가 그렸던 보리밭에는
어린 보리이삭 사이에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 있었지
내 머리 위에 그 양귀비꽃을 심어주게
하얀 양귀비꽃 열매에서는
아편을 뽑을 수 있지
마약 헤로인을 뽑을 수 있지
- 일본현대 대표시선 / 1997년/ 창작과비평사
머리 위에 양귀비꽃을 심어주라니 얼마나 멋진 당부인가? 그것도 어린 보리이삭 사이 빨간 양귀비꽃이라니? 한 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이다. 양귀비꽃으로 피어 아편이나 헤로인으로 누군가의 몸속에 흘러들어 뜨거운 시혼을 불태우고 싶은가 보다. 이쯤 되면 죽음이 두렵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마 위에 개가 똥을 싸고 어쩐지 근질근질한 시인의 몸을 새가 부리로 쪼아대고 시인은 땅 속에서 땅위의 즐거운 경치를 몽상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물고 삶이 죽음을 물고 원무를 즐기는 풍경이다. 그런데 양귀비의 꽃말은 쓰러진 병사라고 한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