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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이상남"아메리카노 여인"

 

내가 아메리카노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내 충혈된 눈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 줄서기에 합류하며 하루를 휘도는 동안 나는 숱한 사람들을 만난다. 전화로 만나고, 얼굴로 만나고, 글로 만나고, 소문으로 만난 사람들의 담금질에 굳은살이 박힌 채 내 눈은 자주 충혈돼 있다. 마치 까페 테라스의 화분 속 화초처럼 항상 싱그럽게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닌 듯 늘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곳을 찾게 된 것은 충혈된 내 눈에 대한 서비스라고나 할까, 안식의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항상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열어놓고 턱을 고인 자세로 무엇인가 사색에 빠져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시들어 가는 한 그루의 나무 같았다. 늘 그 자리에서 별 움직임 없이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 모습이 바람에 나뭇가지 몇 개 흔들어 보는 포풀러 나무 같기도 한 것이 괜스레 나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그늘이 있지나 않나 나를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내 자리는 늘 그 옆 테이블. 뽀얀 생크림에 빵 조각을 찍어 씹으며 내게 허용된 시간들을 잘근잘근 음미하는 편안한 시간. 사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는 공간이다. 마치 길거리에서 듣게 되는 전자 대리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잠시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타게 할 뿐. 오늘 그녀는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어제보다 더 창백해 보인다.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은데 언뜻 스치는 충혈된 그녀의 눈동자,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그를 방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꾸 조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통로 아주머니의 어색한 미소가 떠오른다. 화끈하게 인사를 할 수도 없게 하는 그 민망한 무관심의 증거물처럼 아래로 깔고 있는 눈동자가 자꾸 나를 슬프게 한다.

말을 하고 싶은데, 남들의 이야기만 들으며 보내야 했던 주관 없이 보내버린 내 하루의 일상을, 아니 일과 상관없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비밀, 그 비밀근처의 사연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털어놓은 마음이 옆 테이블의 스쳐가는 노래가 아닌 진지한 대화로 받아 줄 대상이 필요할 때마다 이곳을 기웃거렸던 것 같다. 지친 나무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녀라도 나를 봐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내 눈이 충혈된 날은 자주 이곳을 찾아 그녀의 나무 그늘에 앉아 독백처럼 내 이야기를 풀어놓곤 하는 것이 버릇이 돼 버렸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그녀는 그녀의 테이블에서 그녀의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나는 내 테이블에서 나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각자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활짝 피어있어야 하는 피곤에 지친 도시의 꽃 까페 비앙또. 그는 도시의 시들어가는 무수한 나무, 그 지친 사람들을 그렇게 품어주고 있었다. 웅숭그리며 들어섰던 그들이 피우는 꽃, 서로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그 외로움의 거름 위에서 각자의 사색으로, 그들의 음악으로, 그들의 노래로 오늘도 까페 비앙또는 활짝 피어 있다.

▲에세이 문예 등단 ▲평택문협 회원 ▲한국에세이작가연대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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