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중국과 일본이 섬 하나를 놓고 국제 분쟁을 벌이고 있다. 그 섬에 대한 표기가 신문이나 기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일본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등등이다. 필자는 작년에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외래어표기법의 토론자로 참여한 바 있는 외래어표기법 전문가다. 전문가로서 현재 이 섬에 대한 표기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잘못됐다.
첫째, 그 섬에 대한 일본명과 중국명 두 개를 적는 것은 국민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가 두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양쪽 이름을 다 적어주려 애쓰는 것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두 나라의 이름을 다 적어도 어차피 또 앞에 적고 뒤에 적는 차이가 생긴다. 결국은 두 나라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에 분쟁 지역의 이름을 다 적어주는 게 옳다면 우리나라 신문들은 ‘獨島(일본명 竹島)’, ‘東海(일본명 日本海)’, ‘이어도(중국명 蘇巖礁)’라고 써야 할 것이다. 과연 그게 옳은 일인가?
둘째, 그 섬의 일본명과 중국명을 한자로 적을 때 그 발음은 한국식 한자음으로 적어야 한다. 똑같은 한자에 대해 한국은 한국식 한자음, 중국은 중국음, 일본은 일본음을 각각 가지고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지난 2000년간 한자는 무엇이건 무조건 자기 나라 발음으로 읽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것은 외국의 고유명사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그러니까 한자를 읽는 발음에 따라 그 사람이 어느 민족인지, 그 사람의 언어가 어떤 것인지 결정되는 것이다. ‘釣魚島’를 ‘댜오위다오’라고 읽으면 중국인이고, ‘조어도’라고 읽으면 한국인인 것이다. ‘尖閣’을 ‘센카쿠’라고 읽으면 일본인이고, ‘첨각’이라고 읽으면 한국인인 것이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국인은 한국인임을 부정하고 중국인과 일본인의 앵무새 노릇을 하는가? 한국인은 한자도 읽을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한국인은 한국어가 없어서 중국어와 일본어만 써야 하는가?
중국과 일본은 지금도 뿌리 깊은 전통대로 외국 고유명사도 모두 자기 나라 발음으로 말하고 있다. 오로지 한국만 광복 직후부터 일본 고유명사를 일본어 발음으로 적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를 겪은 후유증으로, 식민지 잔재인 것이다. 그리고 중국 고유명사는 그보다 훨씬 뒤인 1988년부터 중국어 발음으로 적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잘못된 일본어 외래어표기법의 나쁜 영향을 받아 오히려 그 전의 편리한 방식을 개악해버린 것이다.
현재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어 외래어를 자기 나라 발음을 일부러 내쫓고 남의 나라 발음을 가져와서 쓰는 나라는 한국 빼놓고는 단 한 나라도 없다.
나라 간의 일은 상호 대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고유명사를 한국 발음으로 불러주지 않는 한 우리만 중국어와 일본어로 불러줘야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섬의 표기는 이름을 일본명과 중국명 두 개 적을 게 아니라 한국명 하나만 적어야 한다. 그 섬이 중국 영토라고 인식한다면 ‘釣魚島(조어도)’라 적고, 일본 영토라고 인식한다면 ‘尖閣列島(첨각열도)’라고 적으면 그만이다. 바로 그것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올바른 외래어표기 형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