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정치권에는 “허리 아래 이야기는 거론하지 말라”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었다. 즉 여성과의 섹스스캔들은 정치인으로서 하자(瑕疵)가 아니라는 의미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속언과 함께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회자된다.
이는 ‘영웅(英雄)은 호색(好色)’이라는 중국의 고사와도 맥을 함께 하는 고루한 동양적 불치병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여색을 탐하고, 이를 영웅시하는 구시대적 발상인 것이다. 특히 “백제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렸다”는 식의 잘못된 역사인식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삼거나 자신의 정신적 결함을 고스란히 노정시킬 뿐이다.
우리 정치사에 족적을 남긴 큰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염문을 뿌렸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스캔들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찾아보기 희귀하다. 정부기관을 채홍사처럼 부리며 술과 여색에 탐닉했던 대통령도 있었고, 혼외정사를 통해 자녀를 두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말썽이 된 경우도 여럿이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여성편력을 안주삼아 자랑하는 정치인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으니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과거 정치권은 ‘허리 아래 이야기’에 관대했으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국민들은 제왕적 몰염치한 정치인이 아니라 도덕적 흠결이 없는 반듯한 정치인을 원하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본받을 만한 능력은 물론 그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도덕적 완성도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마오쩌뚱(毛澤東)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등장하면서 지도자들의 도덕적 재무장을 요구해 외부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부도덕한 지도자들이 퇴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과거 정치인들은 게이샤나 유흥주점 접대부를 성적 파트너를 삼고, 이를 계파정치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섹스스캔들은 곧 정치생명의 종말을 부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번 ‘장군들의 스캔들’에서 나타나듯 조금 특이하다. 남녀 간 부적절한 관계도 문제를 삼지만 그로 인한 거짓말이나 자기 업무에 대한 해태, 또는 공익에 해악을 끼친 정도를 집중 조명한다. 문제의 장군들도 국가 비밀의 관리와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가정파탄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스캔들이 사회적 매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스캔들(scandal)의 본래 어원은 ‘함정’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skandalon’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의 스캔들은 정치인생뿐 아니라 인생의 함정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