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건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죠.” 아들이 툭 던지는 소리에 놀라 녀석을 쳐다본다. ‘아차, 그렇지… 또 깜박 했네….’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잠시 나의 말을 늦추게 한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늘상 이 말을 했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 아들 녀석이 우리 부부의 이야기에 이렇게 불현듯 끼어들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달은 된 것 같다.
초등학생 또래의 자녀를 키우는 집에서 항상 그렇듯 아이의 교육, 학원, 게임, 교우관계, 선생님 등의 문제에 있어 부부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간혹 서로의 견해 차이로 자연스레 목소리가 높아지고, 조금씩 대화의 분위기가 격해지다 보면 ‘당신은 나와 틀려’라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에 기가 눌려 딴청 피우듯 옆자리에 있던 아들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툭 던지는 한마디가 바로 ‘그건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죠’라는 말이었다.
몇 해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틀리다’라는 낱말의 올바른 쓰임을 묻는 내용이 출제된 적이 있다고 한다. 너무나 쉬운 문제라고 짐작되지만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상의 대화에서 무심코 말을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이치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의 뜻을 지닌 동사로서 뜻풀이를 하고 있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를 뜻하는 형용사로서 뜻풀이를 하고 있다.
혹자는, 언어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항상 변화하는 것이며, 현재 전 국민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해서 사용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고, 이 혼용은 사실상 수십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변화이므로 피해야 할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언어적 표현방식의 혼란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르다. 다르다고 생각해서 틀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적대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오늘은 제18대 대통령선거일이다. 선거과정은 유권자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주요쟁점들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며,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교환되면서 최적의 집단적 의견이 형성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민주의식의 성숙을 경험하게 된다. 선거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를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이다. 이것이 선거 결과를 통한 승패가 아닌 선거 과정을 통한 유권자 모두가 승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며, 선거는 축제라고 한다. 진정 선거가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유권자들의 열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도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해 본다.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아내와 함께 마주잡은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