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사과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사과를 택배로 보내면서 흠집이 있다고, 좋은 것 못 보내서 미안하다며 오히려 선물을 주는 쪽이 미안해 한다. 지난여름 태풍 곤파스가 남긴 상처란다. 사과는 먹음직스러웠다. 큼직하고 빛깔도 좋고 당도 또한 높아 맛이 좋았다. 한두 군데 조금씩 마른 흠집이 있을 뿐 먹는 데는 어떤 불편도 없다.
사과가 붉게 익는 동안 과수원 안엔 얼마나 많은 날것들이 들렀다나갔으며,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느 방향으로 커브를 그었을까 생각하다 사과의 작은 상처를 만난다. 태풍이 남긴 곤파스의 흔적이다.
농작물이 한창 익을 무렵 한반도를 강타한 곤파스로 인해 피해를 본 농가가 많다. 특히 수확기를 앞둔 과수농가가 많은 피해를 보았다. 태풍이 지난 길에는 대부분의 낙과가 발생하였고 나무가 꺾이는 등 많은 문제가 생겼다.
인건비며 농자재 등 물가가 많이 올라서 농사에 소요되는 비용도 많을 텐데 천재지변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본 친구의 고통과 상실감이 가히 짐작된다.
농사를 짓고 나무를 가꾸는 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과 같다. 이른 봄부터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을 내고 병충해 예방을 하면서 농경은 시작된다. 꽃이 피면 수정을 돕기 위해 꽃의 초례청을 차려주고 열매를 솎고 봉지를 씌우는 등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준다. 한 번 더 보듬고 보살피는 정도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고 수확량이 차이나는 게 특히 과수농사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있어서도 어느 한순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겠는가마는 특히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얼마나 유익하고 보람 있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행로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혹자는 이런저런 불리한 조건들을 나열하며 자신이 보잘 것 없이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주변 여건으로 돌리는가 하면, 나를 반성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기보다는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가족이, 사회가 나에게 무얼 해줄 것인가를 바란다. 하지만 같은 처지에서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역경을 기회로 만들어 당당하게 제 몫을 다하며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가는 젊은이들을 볼 때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안겨준 체조선수를 보면 얼마나 멋진가. 그가 영광의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좌절 그리고 위기를 넘겼겠는가.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고 위기 또한 어느 누구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의지와 신념이 오늘을 만든다.
사과의 당도를 높이고 고운 빛의 사과를 얻기 위해 열매가 있는 부분의 푸른 잎을 제거하고 햇빛이 골고루 들어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농부의 심정 또한 후자의 마음이 아닐까. 바구니에 가득 들어찬 사과가 내지르는 향기로 온 집안이 새콤달콤하다.
사과 하나 하나에 들어찼을 친구의 정성이 연말을 훈훈하게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농부의 마음이 되려 한다. 가족들에게, 친지에게, 이웃에게 소홀함은 없었는지. 태풍이 강타하듯 본의 아니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생각해 본다. 기쁨은 함께하여 더 기쁘게 하고 고통은 나눠 덜 힘겨운 삶이 되도록 나누고 살았는지 조용히 되돌아보는 임진년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