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 (목)

  • 구름많음동두천 27.7℃
  • 흐림강릉 29.4℃
  • 구름조금서울 29.1℃
  • 구름조금대전 30.2℃
  • 맑음대구 32.3℃
  • 연무울산 29.4℃
  • 맑음광주 31.6℃
  • 구름조금부산 26.6℃
  • 구름조금고창 32.1℃
  • 맑음제주 29.6℃
  • 흐림강화 26.9℃
  • 구름많음보은 28.2℃
  • 구름조금금산 30.3℃
  • 구름많음강진군 30.8℃
  • 구름조금경주시 32.9℃
  • 구름조금거제 28.1℃
기상청 제공

[박병두의시선]중앙경찰학교 가는 길

 

창밖에는 겨울바람에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눈은 쌓이고 또 쌓여 도로를 하얗게 덮었다. 겨울은 삼한사온이라고 했던가. 비록 이 눈은 며칠 안에 녹아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눈 덮인 세상은 잠시라도 세상이 밝고 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잠깐 왔다 금방 사라지는 눈이지만, 그리고 나 역시 지금 가고 있는 그곳에 잠깐 왔다 떠날 버릴 테지만, 그곳에 가면 잠시라도 흰 눈과 같은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눈 덮인 거리로 나서는 날, 나는 홀로 집밖을 나섰다. 아내가 강원도 교직원 단합회를 떠나서 아내의 배웅 없이 문을 나섰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쓸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걸었다.

잠깐 왔다 금방 사라지는 눈이지만 달리는 차의 앞 유리에 부딪히는 눈은 불편하게 마련이다. 와이퍼로 눈송이들을 걷어내고 FM음악방송을 들었다. 진눈깨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은 매우 거셌다. 차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왠지 모를 불길함이 밀려오자 운전대를 긴장한 채로 잡고 있었다.

내게 중앙경찰학교로 가는 길은 낯설지 않다. 나는 신임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언론대응과 전략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교육생들의 눈송이처럼 맑은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날도 그 눈동자들과 만나기를 고대하며, 나는 미끄러운 도로를 주행했다.

진눈깨비는 줄어들 줄 몰랐다. 차의 속도를 줄이며 엉금엉금 기어가듯 페달에 자주 발이 갔다. 빙판길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차가 미끄러운 길 위에서 제멋대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아뿔싸! 하향도로에서 대책 없이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360도를 돌면서 결국 가드레일을 들이받고는 차가 멈춰 섰다. 미끄러운 빙판길에 미리 대비했기에 사고 당시의 속도는 시속 10km였다. 내 승용차도, 몸도 다친 데는 없었다.

이렇게 연속 두 번을 빙판길에서 회전을 했다. 이런, 수업을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교육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해서 수업을 빠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운전대를 부여잡고 엉금엉금 흐물흐물 중앙경찰학교를 향해 기어갔다.

때로 눈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지인처럼 느껴지지만 그날의 눈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차들이 도로에 서 있거나 나처럼 사고가 난 차도 있었다. 빙판길에 대한 긴장감이 더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적보산 기슭에 자리한 충주 중앙경찰학교의 독수리 마크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독수리 마크가 유난히 커 보여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결국 수업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자초지종을 신임경찰관 연수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지각해 버린 것을 이해해 주는 것은 물론, 빙판길을 뚫고 자신들에게 달려와 준 내 성의에 보답하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날에는 오전과 오후의 수업까지 겹쳐 있어 학교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했다. 눈발이 날려드는 식당 창가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다시 수원으로 올라가는 일이 걱정되었다.

비가 좀 많이 내려준 탓일까. 빙판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360도 회전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 순간 무사히 살아남아 그날의 강의를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며, 나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짧은 시간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죽을 고비를 넘기는 시간이었다. 나는 평소의 강의 주제와는 좀 벗어난 ‘감사와 사랑’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했다. 내가 쓴 시 두 편을 동영상으로 감상케 하고 딱딱한 주제보다는 감성적인 강의로 하루를 마감했다.

수원에 무사히 도착할쯤 그 강의를 들었던 이름 모를 교육생에게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교수님 강의는 정말 저에게 새로운 출발의 힘을 갖게 하였고, 잃어버린 용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경찰시험에 합격하고 이 자리에 서 있으면서 흔들리는 저 자신을 되찾느라 시간을 낭비했는데, 정말 좋은 강의였습니다.”

그날 비록 죽을 고비를 넘기는 시간이었지만 그 문자는 내게 반가운 첫눈과도 같은 것이 되어주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이런 보람으로 강의하겠지만 가르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하루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