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뀐다고 평소 가까운 사람들이 보내는 송년 메시지를 나르느라 작은 기계도 쉴 틈이 없다.
예전 같으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이 대신 할 일을 이제 휴대전화라는 충직하고도 민첩한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격조했던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어 한 해 동안 못 다한 마음을 담고 있다.
하기야 해가 바뀐다고 말처럼 해의 모양이나 빛깔이 바뀌지는 않지만 대개가 그렇듯이 그 날이 그 날인 우리 일상에 날짜를 세어 한 해를 정하고 나이 한 살 더 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다.
금융기관에서도 달력을 돌리기 시작하고 병원이나 상가에서도 손님들에게 달력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새 달력을 받으면 설날이 언제인가 또 휴일은 며칠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는 것도 잠시 덧없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곧 돌아올 연말에 마음이 급해져 결국 이렇다 할 일 없이 또 한 살을 먹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멎는다.
그쯤에서 사느라 안부도 제대로 못 챙긴 사람들을 돌아보며 송구영신 인사를 나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옛것을 되살려 설날이 제 자리를 다시 찾았지만 예전에는 신정을 쇠지 않으면 무슨 미개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의 명절인 설날을 구정이라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분위기로 몰아갔고 억지로 신정을 쇠도록 유도했다.
그 바람에 설날이 평일일 때는 차례를 서둘러 지내고 세배도 하는둥 마는둥 아이들부터 떡국을 먹고 학교에 갔던 웃지 못 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절.
그때의 후유증인지, 그 사이 생각이 변해서인지 몰라도 새해가 되면 벌써 음력으로 해가 바뀌어야만 가능한 줄 알던 무슨 띠부터 찾고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설은 전통방식대로 쇠지만 인사는 양력으로 하는 그야말로 이중과세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옛날처럼 어정쩡한 이중과세가 아니라 아주 독특하게 이원화 된 이중과세를 연출한다. 연말이면 마지막 해넘이를 배웅하는 것은 물론이요,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장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고 전국의 해돋이 명소 부근의 숙박업소는 일찌감치 예약이 끝나고 하루 전날은 기꺼이 교통대란에 합류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무엇이라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을 맺어야 한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면 좋은 일도 있었지만 씁쓸한 기억도 있을 테고 세상의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위기도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질끈 묶어두고 그 매듭 위에서 밝아 오는 새해를 새 마음으로 시작할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소원했던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은 간혹 엇나가는 삶을 바로잡기도 하고 재도약의 기회로 충분하지 않은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에게서 한 해에 하나씩 매듭을 지으며 텅 빈속에 실상은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 꼿꼿이 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득 담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보기를 권한다.
새해 새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