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간도 짧다.” 작년 연말에 오랜 친구가 보내 온 박노해의 詩 ‘동그란 길로 가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누구도 산 정상에 오래 머물 수 없듯이 골짜기에도 오래 있을 수 없으며, 괴롭다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좋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 것이며, 인생이란 동그란 길로 돌아나가듯이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듯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시인은 위로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누구나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詩라고 생각했다.
성장률 올라가도 체감경기 비슷
2013년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눈도 많이 내리고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매서운 추위를 선보이고 있다. 춥다보니 올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처럼 길고 추운 겨울도 곧 지나갈 것이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고 했던 시인의 말처럼 곧 따스한 봄이 오고 화사한 봄꽃들이 선보일 것이다.
2013년 우리 경제는 이처럼 추운 겨울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것과 같고,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내려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게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결국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작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2.2% 내외의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올해의 경제성장률은 3.1% 정도로 소폭 개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작년이나 올해나 별로 달라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연초부터 이상 한파에 따른 채소값 등 식품물가가 들썩이고 전기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전기요금도 올라갈 전망이다. 신규 취업자 수는 작년의 44만 명 증가에 비해 올해는 32만 명 정도로 감소할 전망이다. 기업들이 어려운 국내외 경제 환경에 따라 투자를 망설이고 사람 뽑기도 주저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숫자로 보는 성장률이 작년 2.2%에서 올해 3.1%로 올라간다고 해도, 이처럼 생활물가가 들썩이고 일자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체감경기는 작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 내내 정부 관계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할 걱정거리는 가계부채라고 할 것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 정도로서 세계 주요국 가운데 영국 다음으로 높다. 1년간 벌어들인 소득의 1.5배를 부채로 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새 정부는 행복기금을 신설하고 어려운 사람들 중심으로 부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한 바 있다. 취지도 좋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사람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넘기 어려운 장애물들만 잔뜩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요인들도 많다. 작년 말에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이 한 고비를 넘겼다. 미국의 주택시장과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어서 올해에는 미국이 세계경기의 회복에 있어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 체제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작년의 7%대 저성장 추세를 벗어나 올해에는 8.5% 내외로 올라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5개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6%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신흥국 경기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유럽이다.
가장 큰 위협요인은 가계부채
올해 1월과 4월에 스페인의 국채 만기가 집중되어 있고, 4월의 이탈리아 총선, 9월의 독일 총선 등 여러 가지 위협요인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다 드러난 악재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 성장률은 작년 3.3%에서 올해 3.6%로 소폭 올라갈 전망이다.
올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희망은 수출이다. 소비와 투자는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수출은 해외경기의 훈풍에 힘입어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중심축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 우리 경제에 닥쳐 올 크고 작은 위협요인들을 잘 관리하고 극복한다면, 올해 연말에는 “최악의 시간은 짧았다”고 과거형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